뇌는 기억을 한다. 나아가 그 기억을 바탕으로 행동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결정을 실행하는 것은 뇌가 아닌 근육이고 뼈이고 핏줄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즉시 실행을 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을 뇌가 아닌 '근육이 기억한다'라고 표현한다.
'지네와 새' 우화가 있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던 새가 땅 위를 열심히 기어가고 있는 지네에게 말을 건다. "너는 어떻게 그 많은 다리를 순서를 틀리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지?"라고. 그러자 지네는 갑자기 다리가 꼬여 꼼짝 못 하게 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새는 지네를 쪼아 먹었다.
뇌는 어리석다. 지네의 몸, 즉 다리가 기억하는 순서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뇌가 관장하려는 순간 순서가 꼬이게 된다. 위기나 긴장 상태에서 뇌는 더욱 멍청해진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안다. 이른바 '명문대 출신 고문관'을. 사회에서 똑똑하다는 소릴 들었을 훈련병이 제식훈련만 하면 고문관이 되는 상황을. 교관이, 앞으로 갓! 하면 왼발에 왼팔이, 오른발에 오른팔이 같이 나가며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된다. 웃다가 단체로 얼차려를 받게 되면 똑똑한 뇌를 가진 명문대 출신 신병은 이후 '고문관'이 된다. 이때 복창하는 유서 깊은 구호가 있다."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짬밥을 먹고 또라이가 됐나 봐!"
아는 것도 긴장하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운전하다 가벼운 접촉사고만 나도 당장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 사고현장 사진을 찍고 하는 일들이 평소라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사고 직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그야말로 "사고 나서 또라이가 됐나 봐" 상황이다.
뇌는 잘 속는다. 거짓으로 웃는 표정을 지어도 뇌는 기분 좋은 일이 있는 줄 알고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술이나 약물 같은 것에 중독되는 이들도 이런 물질이 자극하는 거짓 쾌감에 뇌가 속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말도 뇌의 멍청함을 증명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는 뇌를 믿지 말자. 그럼 누구를 믿어야 천국에 이르는가? 답은 근육이다. 근육이 메시아다.
근육이 미래에 올 메시아인 증거는, 몸으로 기억한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기 때문이다. 7살 때 배운 자전거는 70에 다시 타도 가능하다. 뇌가 63년간 저장한 덕분일까? 또 몸으로 하면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책상물림'이라는 말은 책상에 앉아 이론만 공부한 백면서생을 뜻하는데, 몸으로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는 의미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사족. 박정희가 강남 개발하라 시키니 이건희는 지도 펴고 연구하는 동안 정주영은 땅을 샀다. 그게 현대아파트다. 망치로 못을 때리면 박힌다는 건 이론이지만, 그 이론을 연구하는 시간에 목수는 번듯한 집을 짓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풍월로 들은 수준의 뇌과학에 대해 아는 척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뇌, 즉 머리를 쓰는 일에 대한 과도한 평가가 못마땅한 이유다. 머리 쓰는 일이 몸 쓰는 일에 비해 더 낫다고 여긴다면 기억을 관장하는 곳이 오직 뇌라고만 믿거나, 뇌만이 더 가치 있는 것을 기억한다고 여기는 탓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다리 꼬인 지네가 되어 나무 위의 새에게 잡혀 먹힐 각오를 해야 한다. 더구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위협하는 시대에 몸으로 기억하는 지식, 몸이 반응하는 행동의 가치를 어떻게 폄훼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시대가 반갑다. 저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수많은 장기 중 하나인 뇌의 역할을 마치 신비한 능력인 양 받드는 현대인들이 인공지능의 무한한 능력에 한 방 먹기를 바란다. 또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춘대도 내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고, 내가 연인을 안고 춤추는 즐거움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아는 척 잔소리하고 싶지만 지루함을 못 참는 뇌를 위해 마무리를 하자면, 다들 잔머리 좀 그만 굴리고 몸으로 해보라는 것. 머리만 굴리고 몸을 안 움직이면, 맞는 모자가 없는 대두 E.T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