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이 없던 내가 거의 20년 가까이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 물론 중간에 드문드문 쉬기도 했지만 여태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목표를 낮게 잡고 느리게 조금씩 거리와 시간을 늘린 덕분이 아닌가 싶다.
군 복무 시절, 구보만 하면 목에서 신물이 올라올 만큼 괴로워 구보만 없어도 군 생활 십 년은 하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그간 마라톤 전 구간을 여러 번 완주할 만큼 달리기를 즐길 수 있게 된 비결은, 바로 목표를 낮게 잡고 서두르지 않고 매일 한 발자국, 일 분, 더 나아간 덕분이었다. 원래 운동에 소질이 없다고 믿은 탓에 처음부터 자신을 그다지 믿지 않은 때문이다.
흔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목표를 이루는 비법이라 한다. 맞는 말이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 견디기만 해도 경쟁자의 반은 떨어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학원의 돈줄은 고급반이 아니라 초급반이라고 한다. 초급반 수강생은 한 달 지나면 삼분의 일, 두 달 지나면 반이 안 나오며, 석 달이 지나면 서너 명만 남는단다. 그리고 다시 수강생을 모집하면 새로운 수강생과 더불어 포기했던 사람들이 재등록을 한다고.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면 포기와 결심을 반복하는 초급 영문법 수강생의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꾸준히 하면 된다"는 말은 불친절하다. 포기하지 않는 방법부터 알려줘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힘을 빼야 한다. 어깨에 힘을 빼야 폼도 살고 부상도 피하는 건 운동만이 아니다. 초보자의 어깨를 뻣뻣하게 만드는 힘을 빼려면 목표가 낮아야 한다. 비슷한 조언으로, 높은 목표에 쉽게 오르려면 과정을 계단처럼 잘게 쪼개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목표는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니 목표 따위는 애초에 생각도 말자. 오직 방향만 정하자.
목표는 정상이 아니라 오늘의 한 계단이다. 내일은 내일의 한 계단을 오르면 된다. 그러다 보면 희미하게 정상이 보이는 때가 오고 모르는 새 자신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깨닫고는 비로소 욕심이 생긴다. 이제 정상이 목표가 되는 순간이다. 매일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은 자신이 뭘 하는지 몰라도 된다. 그저 매일 한 계단 오르는 즐거움만 찾으면 된다.
간혹 처음부터 결코 포기 못 할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의지의 한국인' 타입이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험난한 목표라도 중도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에 서너 계단을 뛰어올라도 신이 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숨이 턱에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은 목표를 달성한 뒤 얻을 쾌감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 바로 쾌감이다. 정상에 오른 쾌감이든 한 계단의 쾌감이든 중요한 건 쾌감이다. 포기와 실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쾌감의 경험이 없다. 그러니 방향 따위 걱정 않고 그저 하루에 하나의 계단을 오른 성취에 만족하고 즐겨야 한다. 그런 매일이 쌓여 어느덧 높이 오르게 되면 그때 구름 속에 희미한 정상이 보이게 될 테고, 그게 무엇이든, 생각지도 못한 결과든, 누가 말려도 뿌리치고 달려갈 것이다. 정상이 보이는데,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왜 오르지 않겠나!
바보들의 특징은 의심이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여기가 아닌가 봐? 하다 아무 데도 못 간다. 의심은 방향을 몰라서가 아니라 벅찬 목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그러니 잘하고 있는 걸까? 의심을 할 시간에 무턱대고 한 계단을 오르라. 고개 들어 멀리 보지도 말고, 오늘은 오늘의 한 계단만. 49.1Km 마라톤이나 히말라야 정복의 비법이란 천천히, 어떤 의심도 소문도 닫아버리고 오직 자기 호흡과 발자국 소리만 믿으며 한 발씩 내딛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여기까지 나의 주장이고 수많은 현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한 계단 오르려 신발을 신는 것도 귀찮다. 그럼 어떻게 할까. 하긴, 몰라서 안 하나? 게을러서 안 하지. 그럼 나도 현자들도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