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

by 세인트

(년 전에 만든 글쓰기 모임 중 회원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글로 옮겼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정리해 두면 급할 때 사골국처럼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글이 반드시 헤밍웨이나 김훈처럼 단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문이 훈련되지 않으면 중문이나 복문과 어울려 글의 매력을 살릴 수 없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대체로 단문이다. 칼럼이나 르포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글쓰기에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글쓰기 강좌가 단문을 강조한다. 이는 단문이 더 나은 문장 형태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모호한 언어 습관이 글쓰기에까지 주는 영향을 고치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는 실용을 중시하는 서구인들의 언어와 달리 동사나 목적어를 뒤에 둔다. 이른바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소리가 있듯이. 그러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수식어나 접속사가 줄줄이 이어져 글을 늘어진 고무줄처럼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목적이나 생각을 대뜸 말하는 것은 예의 바르지 못하거나 점잖지 못하다는 오해가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결국 자신의 언어를 글자로 남기는 일이므로 서로 다를 수 없다. 또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말할 때 중언부언 하게 되듯이, 단문이 훈련되지 않으면 의미를 알아채기 힘든 만연체에 빠지기 쉽다. 단문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문제를 고쳐보자는 것이지, 결코 단문이 중문이나 복문보다 우위에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에게 말을 시켜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 그래 가지고 ‘, ’그런데‘가 서너 번은 나온다. 생각이 정리가 안 된 때문이다. 간혹 안 쓰던 단문을 쓰니 표현이 제대로 안 된 것 같고 어색하다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단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 문제로 보아야 한다. 단문으로 쓸 수 없는 표현은 없다. 언어습관이 잘 못 되었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을 의심해 볼 팔요가 있다.


단문은 단단하고 명쾌하다. 그 이유만으로 더 나은 형태라 할 수는 없다. 단문만으로도 충분히 표현은 가능하나 중문이나 복문과 어울려 리듬을 가질 때 단문의 가치가 더욱 돋보일 수 있다. 따라서 단문을 강조하는 것은 단문이 목적이 아니라 단문을 쓰지 못하고는 명확한 전달은 물론, 어울려 리듬감을 더 할 중문이나 복문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섬마다 꽃은 피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 의 칼같은 첫 문장이다. 단문이다. 또 '꽃이'가 아니고 '꽃은'이다.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이 죽어가고 강산이 피바다가 될 난세가 코 앞임에도 무심히 꽃은 핀다는 의미일 것이다. '꽃이' 피었다와 얼마나 다른가.


이 짧은 단문 하나가, '은'과 '이' 글자 하나가, 이토록 많은 의미를 가지는데 단문이 어떻게 단지 '짧은 문장'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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