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금 파는 아이

by 세인트

(IMF를 막 지날무렵, 대구매일신문에 연재한 칼럼 중 하나입니다. 지난 글을 브런치에 갈무리하기 위해 올립니다, 근데 그 유서 깊은 신문이 요즘 우짜다 이리 홀랑 망가졌을까요.ㅠㅠ)


너무도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점쟁이를 찾아가 자신의 손금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너는 손금이 나빠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 후 소년은 자신의 손금을 바늘로 파가며 열심히 산 끝에 아주 잘 살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글을 읽으면 긴장하게 된다. 타성에 젖은 날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궁금하다, 이 이야기에서 소년이 잘 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쁘다는 손금을 다시 팠기 때문일까? 그래서 운명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그같은 소년의 노력이 그의 미래를 바꾼 것일까?


알 수 없다. 때때로 우리의 인생은 정말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이미 결정지어진 대로 살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고스란히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인지. 그것은 소년일 때도 그랬고, 모르는 게 없다는 불혹을 넘은 지금에도 그렇다. 알 수 없는 미래는 우리에게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와 조금은 알 듯한 것은, 그것이 운명에 달렸든 의지에 달렸든, 사람은 누구나 희망 쪽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손금이 좋다면 그 희망에 힘을 얻어 살 것이며, 나쁘다면 그렇게 손금을 다시 파가면서라도 살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쨌든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그러니 애당초 실없는 얘기를 꺼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에 꺼낸 소년의 이야기도 그리 대단하거나 유별난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나약하여 손금을 내보이며 미래를 불안해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든 희망을 버리지 않기에 우린 또 강하다. 그러기에 운명이냐 의지냐가 아니라, 희망이냐 아니냐일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손금 파가며 희망하는 미래조차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러는 그도 오늘 아침 신발끈 고쳐 매고 씩씩하게 일터로 나섰을 것이다. 운명이 열리는 감나무 밑에 가만히 누워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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