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까칠한 시선 ver.2

by 세인트

허, 거참, 한 번 해보니, "너 잘하고 있어", "너 예뻐", "너 아프지?" "그래 우쭈쭈", "아프니께 청춘인 겨", 이런 말랑한 소리만 쓰는 거보다, 까칠하게 시비 거는 게 투덜이 스머프 당숙쯤 되는 내게 맞는 거 같아 한 번 더 까칠해져 보기로 한다.


어느 신문 칼럼을 읽는데, 읽다가 내가 죽을 칼럼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말끝마다, 시작마다, "데리다가 어쨌는데", "푸코가 말하기를"이다. 대체 현대 서양의 철학자들 말씀이 얼마나 오래 숙성되고 검증됐다고 뻑 하면 데리다고 푸코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정도면 오랜 세월 검증해 봤을 테니 써먹어도 안전하겠지만, 요즘 칼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설마 아리스토텔레스를 두고도 업계에서 틀딱이니 노친네니 하는 건 아닐 테지.


새로운 이론이란 과거 이론보다 발전한 것이고 시대에 맞는 이론이겠지만, 말끝마다 그걸 인용하는 건 대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인지 남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데리다도 좋고 삼손도 좋지만 칼럼을 쓰려면 남이 어쩌더라 저쩌더라 하기 전에 자기 이론과 자기 사상으로 썰을 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삼손과 데리다, 아니, 푸코와 데리다를 끌어들이는 이유를 짐작건대, 첫째, 그들의 높은 학식을 '내가' 이해하고 있다. 둘째, 삼류가수 치고 조용필을 용필이 형이라 부르지 않는 자가 없고, 유리 새시 업자는 모두 63 빌딩 자기가 지었다고 하듯, 데리다나 푸코의 이름을 자주 들먹임으로써 그들과 같은 끕으로 보일 수 있다. 셋째, 이런 칼럼을 실어줌으로써 수준 높은 신문으로 보이고 싶은 수준 높지 않은 신문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 진다. 이런 게 아닐까.


어떤 때는 하도 인용이 잦다 보니 정말 푸코와 데리다가 그 말을 했을까? 검색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어릴 때 좋은 말 끝에 '도산 안창호' 이렇게 쓰여있는 게 많아서 나는 안창호라는 사람이 무척 수다스러운 사람인가 보다 했다. 또 녹음기도 없던 시절에 누가 쫓아다니며 그 말을 다 기록했을까 싶었고. 그러니 아무 말이나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라고 해도 반박할 수 없겠다.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다면 기록이 없을 뿐 하지 않았으리라는 증거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머리카락 숫자가 123456개라고 해도 반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차피 세어볼 수가 없으니까.


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자신이 많이 배웠고 그래서 아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푸코와 데리다 보다는, 자기 이론으로 주장하고 증명하는 게 옳겠다. 시골의 할배 할매는 배운 게 많지 않아도 삼손과 데리다 못잖게 도리도 알고 이치도 아신다. 안 그러면 애저녁에 동네에서 쫓겨났다. 그러게 평생 동네 젊은이들이 고개 숙이며, 도시의 젊은이들처럼 '틀딱'이니 '개꼰대'니 하지 않는 거다.


차라리 그럴듯한 이론을 인용을 하거나 주장의 방패막이로 삼으려면 시골 할배 할매의 삶에서 나온 생생한 지혜를 내세우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스스로 해보고 나서 말하든가. 많이 안 배우고도 많이 성공한 정주영 회장께서 남긴 명언이 있다. "해봤어?"



*까칠은 이것으로 끝. 계속하면, '긍정의 마음을 가지면 그 파동이 하늘에 닿는 시크릿으로 복이 내릴거'라는 젤 싫은 말 듣게 될까봐. 그리고 브런치는 우쭈쭈 물고 빠는 얘기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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