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잘 생겼다는 걸 아는 놈만큼 재수 없는 놈이 없어!"라고 어떤 여자애가 그랬다. 나는 내가 미남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니 재수 없는 놈은 아닐 것이다.
소개팅으로 아내와 처음 만났던 곳은 아내의 집 근처 지하카페였다. 쿵쿵 울리는 나무 계단을 내려가 카페문을 열자 어둠이 와락 밀려왔다. 이미 3월이건만 알록달록 성탄절 꼬마등만 반짝거릴 뿐, 카페의 흐릿한 조명은 한참을 암순응해서야 겨우 내부의 모습을 알아보게 했다.
"어, 여기!" 하는 소리가 들려 게슴츠레 눈을 찌푸리니 깊숙한 안쪽 자리에서 손을 흔든다. 소개팅을 주선한 아내의 사촌오빠. 잠시 머뭇댄 것이 계면쩍어 웃으며 자리에 앉았더니 앞에 얼굴이 뽀얀 아가씨가 새치름히 눈을 깔고 앉아있다. 예쁘다!
세월이 지나 아내에게 나같이 가난한 집 아들 뭘 볼 게 있다고 결혼했느냐 물으니, 그날 어두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카페가 환하도록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던 모습과 찻잔을 만지는 길고 가는 손이 귀티가 나 맘에 들었단다. 여자는 현실적이라지만 이처럼 비현실적인 이유로 현실의 남자를 택하기도 한다.
단골이 된 어느 LP카페 주인은 내 또래의 남자다. 그런데 그도 같은 얘기를 한적 있다. 내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자기를 보고 환하게 웃는 게 그렇게 보기 좋단다. 그러면서 요즘은 구하기 쉽지 않은 '남과여'영화음악 LP음반을 내게 선물했다. 거기 담긴 SAMBA SARAVAH라는 곡을 좋아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며. 그때만 해도 단골이라기에는 겨우 서너 번 들렀던 때고, 혼자 돈 안 되는 맥주나 홀짝 거리는 손님인데 받으면서 몹시 미안했다.
어릴 때부터 잘 웃고, 웃는 게 보기 좋다는 소리를 더러 듣긴 했다. 사내치고 손이 곱다는 얘기도 들었고. 하지만 안 웃고 있을 때는 몹시 차가워 보인다는 말도 듣는다. 그게 신경 쓰여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일부러라도 웃으려 애쓰는데, 낯가림이 심하니 오히려 차갑게 굳은 인상이 된다. 때문에 몇 차례 만난 뒤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인데, 처음엔 싸가지 없는 줄 알았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소용이 없는 나이가 됐다. 미소가 환하든 손이 곱든, 나이가 드니 인상도 나빠지고 잘 웃지도 않는다. 손은 이미 힘줄이 불거지고 검버섯도 생겼다. "피부가 희면 잡티가 잘 생긴대" 하고 변명하지만 곱게 살아오지 않은 건 손이 먼저 안다.
잘 생기지 않았어도 잘 웃는 것만으로도 예쁜 아내를 얻고, 남과 여 LP도 얻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사라졌으니 무엇으로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다. 이제 웃어봐야 차라리 우는 게 더 보기 좋다는 놀림을 받을 테니, 얼굴로 웃는 대신 글로 웃기로 했다.
오늘 하루를 재미나게 쓰고, 재미있게 쓰기 위해 웃는 눈으로 보고, 쓰면서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래서 또 웃고. 가끔 사포로 문지른 듯 까끌까끌 까칠한 글도 쓰지만, 나는 원래 잘 웃는 사람이었으니 그 속에도 따뜻한 미소를 숨겨 놓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톡톡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
"지가 잘 생겼다는 걸 아는 놈만큼 재수 없는 놈이 없어!"라고 말한 그 여자애가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지가 잘 웃는다는 걸 아는 놈만큼 재수 없는 놈이 없어!"라고 하지는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