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간격의 그리움 - 박지하
https://youtu.be/nEHQ5fkcUf8?si=47JtNTy5USZYkMfL
박지하의 음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하지만 어디에서 왔는지 보다는 어디로 갈 것인지 묻고 싶을 만큼 늘 놀라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생황의 숨이 길게 이어지고, 비브라폰의 영롱한 음이 그 위에 겹쳐치며 그의 음악은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경계를 흐릿하게 만듭니다.
박지하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를 연결한다는 빤한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황이라는 악기가 지난 시간의 깊이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음악은 그저 ‘옛것을 불러오는 방식’이 아니지요.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 소리를 다시 배열합니다. 그러기에 이 곡에는 과거와 현재에 모두 유효한 무엇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서 생황은 연주자 박지하의 숨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박지하 자신의 목소리처럼 여겨집니다.
생황은 이별의 애절한 멜로디를 이끌어가고 비브라폰은 그 공간을 스치며 슬픔의 흔적을 남깁니다.
금속의 울림이 차갑게 튀지 않고 잔향으로 남는 이유는 두 악기가 서로를 앞서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음악은 실험적이지만 낯설지 않고, 형식은 새롭지만 듣는 이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귀를 열어두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흐름, 이 점이 박지하의 음악을 흔히 말하는 '국악의 현대화'니 ‘실험 음악’이니 하는 범주에만 가두지 않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의 작업이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이 음악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전통음악의 맥락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역적 정체성은 분명하지만, 그 정체성이 진입 장벽으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박지하는 과거 국악그룹 '숨'에서부터 전통을 보존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현재의 언어로 옮기는 선택을 했습니다.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발표하는 박지하의 음악도 그 흐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이 곡을 고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멀어진 간격의 그리움>에서 ‘그리움’은 특정 대상을 향하기보다 시간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으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암시하는 ‘먼 곳’은 과거가 아니라 어쩌면 앞으로 도착하게 될 지점처럼 느껴집니다.
간혹 젊은 국악인들의 이와 같은 작품을 두고 ‘케이팝의 미래’ 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박지하의 작업은 그런 구호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돌 산업의 확장과는 다른 궤도에서, 한국 음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이미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음악은 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라, 세계 음악으로서의 자연스러운 호흡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국적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 소리에 반응하고.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도 보편성을 확보하는 방식인 거지요.
<멀어진 간격의 그리움>은 그 가능성을 과장 없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시작해 조용히 끝나지만
듣는 사람 안에서는 오랜 울림을 남깁니다. 이건 과거의 음악도, 미래의 음악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들리는 음악이니까요.(수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