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은퇴 후 조용히 노년을 살고 있는 한 남자, 토니 웹스터가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는 이야기다. 학교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의 자살, 젊은 날 연인이었던 베로니카와의 불편한 기억,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뒤 느닷없이 도착한 한 통의 유언장. 이 노년의 화자는 “나는 평범하게 살았고,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다”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온 서류 한 묶음이 그 믿음을 서서히 흔들기 시작한다.
토니는 이야기의 서두에서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규정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곧 이어서 이런 의문을 던진다.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난 역사, 나 자신의 작은 인생사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이 말속에는 이 소설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질문이 숨어 있다. 우리는 과거를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믿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편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조금씩 바꾸어 온 것은 아닐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현재 시점에서, 토니의 삶은 겉으로 볼 때 매우 단조롭고 안전하다. 이혼했지만 전처와 친구처럼 연락하며 지내고, 딸은 나름의 가정을 꾸렸고, 그는 은퇴자 모임에 나가고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문학 작품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남의 인생을 구경하다 지나칠 법한 인물이다. 그가 말하듯 자신은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하는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하지만 청년 시절의 기억을 꺼낼수록 그 평범함은 서서히 의심스러워진다. 친구 에이드리언은 누구보다 지적이고 진지했던 동시에, 삶의 의미를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다. 대학에서 만난 여자친구 베로니카와의 연애, 그 후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토니가 보낸 편지 한 통. 이 소설은 바로 그 편지가 불러온 결과를 수십 년이 지나서야 다시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시간이 오래 흘러 모든 게 희미해졌다고 믿지만, 사실은 가장 잔인한 순간이 그 희미함 속에 숨어 있었음을 깨닫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건 자체보다 '어떻게 기억하느냐'이다. 토니는 자신이 젊은 시절에 겪은 사건을 나름의 버전으로 오랫동안 보관해 왔다.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상처를 받았고, 어느 정도는 억울했으나, 그런 일들을 대체로 큰 흔들림이 없이 넘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과 함께 과거의 기록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나면서 그 기억은 수정된다.
반스는 이런 대사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찌른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기억이란 ‘사건에 시간을 더한 것’이라고. 그러나 기억은 그보다 훨씬 기묘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정착제가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문장을 덧붙인다. 우리가 흔히 믿는 것과 달리, 시간이 모든 것을 단단히 굳혀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의 모양을 조금씩 녹이고 흐트러뜨린다는 뜻이다. 토니가 믿어온 '내 인생 이야기' 역시 그 용해제를 거치며 자신에게 편리한 형태로 가공된 결과물일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의 큰 힘은, 토니가 그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극적인 장면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폭언이나 눈물의 고백 대신 오래된 편지를 다시 읽는 장면들, 서류철을 넘기는 순간들, 이메일 몇 통, 카페에서 오가는 짧은 대화가 전부다. 그런데 이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토니의 과거를 조금씩 뒤집는다. 그는 자신이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게 보냈던 편지를 다시 읽고 나서야 그 문장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열했는지 깨닫는다. 예전에 그 편지를 썼을 때는 '누구나 쓰는 따끔한 말'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며 그는 그 편지의 내용도 거의 잊었다. 기억 속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적당히 억눌렀던 연인, 다소 애매하게 배신당한 친구 정도로 설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문장은 남아 있고,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은 그 문장은 이전의 기억을 모두 지워 버린다.
이때 독자는 묻게 된다. 우리가 끝났다고 믿었던 사건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이렇게 '편집된 버전'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 메신저 기록 한 페이지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 역시 내 과거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줄리언 반스는 토니라는 노년의 화자를 통해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이 질문을 내놓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시간은 단순히 기억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어떤 선택의 윤리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토니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남을 크게 해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의 자살과 관련된 진실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내렸던 판단과 행동이 한 사람의 삶을 잔인하게 뒤틀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스는 이런 문장으로 노년의 회한을 표현한다. '우리는 그때 성숙하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안전한 쪽을 택했을 뿐이었다. 책임감이라고 여겼던 것도 실은 비겁함이었고,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삶에 맞서기보다 피하는 법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확실해 보였던 결정들마저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이 문장은 단지 토니만의 반성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을 법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토니는 손목의 맥박에 따라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과 달리, 기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측정되는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시계가 알려 주는 시간과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 이 주관적인 시간 속에서 과거는 때때로 현재보다 더 생생해진다. 어떤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제 일처럼 떠오르지만, 어떤 시기는 거의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 이 선택적인 밝기와 어둠 속에서 인간은 자기 인생을 기억하고 해석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해석의 윤리를 정면으로 묻는 작품이다.
토니의 과거를 다시 보고 난 뒤, 독자는 단순한 반전 이상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정리되지만, 그는 끝까지 완전한 용서를 받지도, 완전히 구원되지도 못한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여전히 자신에게 관대하려는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인정한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이 자각은 늦게 찾아왔지만, 그 늦음 때문에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시간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매우 흥미롭다. '기억'은 틀린다. 시간은 기억을 녹이고 비틀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유리한 방향으로 과거를 자꾸 편집한다. 하지만 '예감'은 언젠가는 현실이 따라잡는 순간이 온다. 토니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편지 한 통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낳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만 그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은, 언젠가 우리가 외면해 온 예감이 현실에 의해 확인되는 순간을 곧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이 책의 앞선 작품들에서 우리는 여러 얼굴의 시간을 보았다. 프루스트의 시간은 향기와 맛으로 다시 깨어나는 과거였고, 가와바타의 시간은 눈 덮인 풍경 속에 가만히 스며 있는 계절이었다. 카프카의 시간은 어느 날 아침의 절단된 의식이었고, 포크너의 시간은 여러 목소리가 뒤엉켜 하루를 부수는 구조였다. 이시구로의 시간은 너무 늦게 도착한 깨달음, 모디아노의 시간은 끝내 다 알 수 없는 공백들 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실종이었다. 흐라발에게 시간은 압축기의 큐브 속에 눌려 있는 세월로 나타났고, 토니 모리슨의 시간은 결코 과거형으로 말할 수 없는 폭력과 트라우마로 돌아왔다.
줄리언 반스가 여기에 더하는 것은, '내가 직접 편집한 내 인생 이야기'와 실제로 일어났던 시간 사이의 거리다. 이 거리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웬만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 관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편지 한 장, 어떤 말 한마디가 뜻밖의 방식으로 되돌아올 때, 우리는 그 거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문장처럼, '우리가 끝내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목격했던 것과 항상 같지 않다.'
이 장을 마무리하며,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내 이야기’라고 믿어 온 것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시간이 만든 편집본에 불과한가. 언젠가, 어떤 문장 하나가 당신의 기억을 다시 쓰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때 당신의 예감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게 될까”(수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