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

속도는 나의 것

by 세인트

[1부] 리듬의 발견: 나만의 보폭을 찾아서


1장. TEMPO - 속도는 나의 것


작고 어둡지만 어딘가 흥분의 열기가 자욱한 재즈클럽. 막 연주가 시작되기 전. 정적을 깨는 것은 악기 소리가 아니다. 먼저 연주자가 가볍게 발을 구르거나, 허공에 손가락으로 '딱, 딱' 소리를 내며 박자를 세는 짧은 눈짓. 그리고 악기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재즈에서 '템포(Tempo)'는 박제된 숫자가 아니다. 같은 곡이라도 그날 기분, 공연장의 열기, 함께 연주하는 동료와의 미세한 긴장감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른가'가 아니라, '이 곡의 느낌을 온전히 담기에 가장 적절한 속도인가'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연주라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타인이 맞춰놓은 메트로놈에 자신을 맞춰 왔다. 세상은 늘 더 빨리 달릴 것을 재촉하고, 남들보다 한 박자 늦는 것은 '낙오' 혹은 '결함'이라 부른다. 교육의 속도, 성공의 속도, 심지어는 행복해져야만 하는 속도까지 규격화되어 삶을 압박한다. 하지만 재즈의 세계에서 맥락 없는 속도는 선율의 우아함을 훼손할 뿐이다. 너무 이른 진입은 리듬을 깨뜨리는 조급함이 되고, 준비되지 않은 질주는 결국 소리의 뭉개짐으로 이어진다.


인생의 템포를 결정하는 기준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물리적 시간이라면 슬픈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을 충분히 감상하며 연주하고 있는지, 아니면 숨을 헐떡이며 내 악기가 내는 비명조차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피는 내면의 감각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경쾌한 '업템포(Up-tempo)'로 삶의 전성기를 가로지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반면 어떤 이는 느릿하고 깊은 '발라드(Ballad)'의 호흡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두 연주 사이에는 결코 우열이 없다. 오직 주어진 속도에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을 맡기느냐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때때로 주변의 속도가 광속으로 변해 나만 홀로 정지한 것 같은 불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친구의 승진 소식, 동료의 성공담, SNS에 펼쳐지는 타인의 화려한 모습들을 보며, 나의 템포가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하지만 재즈에는 '루바토(Rubato)'가 있다. 원래는 '도둑맞다'라는 뜻이지만, 연주자가 임의로 박자를 늘이거나 줄이며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때로는 박자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길게 늘어질 권리가 재즈 연주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 빈 공간을 밀도 있게 성찰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로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은 늦은 게 아니라 '깊어짐'이며, 정체가 아니라 '농익음'이 된다.


속도는 힘이 세지만, 방향이 없는 속도는 폭력적이다. 빠르게 몰아치는 연주 속에서도 연주자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듯, 소란스러운 세상의 속도 속에서도 나만의 메트로놈을 지켜내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타인의 박수 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용기이며, 내 안의 박자가 일으키는 고유한 진동을 믿는 자존감이다. '나답게 산다'는 말은 결국 '나만의 템포를 찾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오늘 나의 템포는 어떤가. 너무 앞서가느라 현재라는 음표를 무성의하게 뭉개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타인의 박자에 내 보폭을 억지로 끼워 맞추느라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생이라는 긴 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남들보다 빨리 끝내는 순간이 아니라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까지 충분히 음미하며 마지막 음을 맺는 순간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오직 나만이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그 적절한 속도를 회복할 때, 삶은 비로소 소음에서 음악이 된다. 템포를 늦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때로는 천천히 연주할 때만 들리는 아름다운 화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의 인생은 서두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연주되고 있으며, 그 속도가 무엇이든 그것이 나의 진심이라면 그 자체로 완벽한 명곡이다.(수필/음악)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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