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SION

by 세인트

6장. TENSION - 긴장이 주는 팽팽한 생동감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를 듣다 보면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때가 있다. 분명 연주자는 화려한 기교를 뽐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어, 방금 음이 좀 나간 거 아닌가?' 싶은 묘하게 뒤틀린 소리가 들린다. 악기 조율이 나갔나 싶어 연주자의 표정을 살피지만, 정작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리를 냈다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다음 음을 이어간다. 바로 '텐션(Tension)' 노트를 건드렸을 때다.


텐션은 도-미-솔처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들어온 익숙하고 편안한 기본 화음 위에, 조금은 낯설고 뾰족한 음들을 툭 얹는 걸 말한다. 원래의 자리에서 살짝 비껴나 있어 귀를 예민하게 자극하고 심지어 불안하게까지 만들지만, 이 불안한 소리들이 빠진 재즈는 재즈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밋밋하게 흘러갈 뻔한 곡에 세련된 색깔을 입히고, 다음 마디로 넘어갈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엔진이 바로 이 긴장감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삶도 온통 텐션 투성이다. 우리는 흔히 아무런 걱정도, 다툼도, 불안도 없는 진공 상태를 '완벽한 행복'이라 믿으며 그 평온한 섬에 도착하기를 꿈꾼다. 모든 게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와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하는 인생. 하지만 그런 삶은 처음에는 편할지 몰라도 금세 지루해질 것이다.. 하긴, 그런 삶이 세상에 있기나 할까? 매일 똑같은 날씨가 반복되고 똑같은 음식만 먹어야 하는 것처럼, 긴장이 사라진 삶은 고여 있는 물처럼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인생의 진짜 맛은 사실 그토록 밀어내고 싶어 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터져 나온다.


일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텐션은 사실 거창한 시련보다 사소하고 민망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서먹한 직장 동료와 단둘이 탄 엘리베이터 안의 짧은 정적, 낯선 자리에 자기소개를 하기 직전의 두근거림 같은 것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어색함을 깨려고 의미 없는 날씨 얘기를 던지거나, 갈등이 싫어서 내 생각을 억누르고 헛웃음으로 넘기는 일. 하지만 재즈의 시선으로 보면, 이건 지금 내 인생이라는 곡에 아주 고급스러운 '텐션 노트'가 들어온 순간이다. 그 어색함과 긴장이 있기에 비로소 '나'와 '너'라는 서로 다른 악기가 만났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때문이다.


재즈에서 텐션이 진짜 멋있어지는 절대적인 조건은 그 긴장이 결국 안정적인 음으로 돌아오는 '해결(Resolution)'의 과정을 거칠 때다. 어딘가 비껴간 듯 청중을 긴장시킨 소리가 다음 마디에서 거짓말처럼 포근한 화음 속으로 스며들 때, 객석에서는 비로소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 카타르시스는 텐션이 높으면 높을수록 훨씬 더 달콤하고 강렬하다.


우리 시련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일주일 내내 머리를 싸매며 퇴고를 거듭하던 기획안을 드디어 제출하고 난 뒤의 그 짜릿한 해방감, 냉전 중이던 친구와 서툴게 사과를 주고받고 나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의 맛, 수십 번의 가슴 떨림을 누르고 고백한 뒤에 찾아오는 짧은 침묵의 무게. 이런 진한 쾌감은 오직 팽팽한 텐션을 끝까지 견뎌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이 긴장된 상황이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건, 그저 우리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마디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마디가 바뀌면 이 소리는 반드시 어딘가 안착할 곳을 찾게 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삶의 텐션을 다루는 숙련도에 달렸다. 경험이 적은 초보 연주자는 두려움이 앞서 쉽게 텐션코드로 들어가지 못한다. 겁을 먹고 자신 없는 밋밋한 소리만 내게 된다. 우리 삶도 그렇다. 불안이나 갈등이 찾아오면 당장 지워야 할 '오답'으로 보고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텐션 노트를 과감하게 누르지 않는 연주는 밋밋한 코드밖에 쓸 수 없듯, 긴장을 거부하는 삶은 영혼의 근육을 키울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진짜 멋진 연주자는 그 불안한 소리를 오히려 즐긴다. 도망치지 않고 마디 끝까지 그 울림을 충분히 끌고 가며 곡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내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꼭 필요한 소리'라고 정면으로 인정하는 태도다.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건 갈등이 하나도 없는 진공의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삶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여러 가지 텐션들을 유연하게 운영할 줄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며 상대의 다음 말을 차분히 기다려주는 여유, 불안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바꿔 맞이하려는 배짱. 그런 이들에게 긴장은 삶을 무너뜨리는 소음이 아니라, 연주를 더 세련되게 만들어주는 장식음이 된다. 우리는 텐션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나'라는 악기가 얼마나 깊고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스트레스는 적이고, 모든 종류의 긴장은 해로운 것이니 편히 쉬고 힐링하라 말한다. 하지만 재즈의 방식은 다르게 말한다. 적당한 긴장이 없는 삶은, 줄이 느슨하게 풀려버린 기타와 같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만이 명징하고 맑은 소리를 내듯이 우리 영혼에도 삶을 지탱해 줄 적당한 수준의 긴장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 밤, 어떤 고민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힘든 관계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어쩌면 지금 인생이라는 긴 연주에서 가장 깊이 있는 화성을 쌓아 올리는 중일수 있다. 곧이어 올 눈부신 '해결'의 순간을 향해 불안한 느낌의 코드가 앞섰을 뿐이다. 텐션이 깊을수록 이어지는 해결은 더욱 짜릿할 수밖에 없다. 운명과 한판 놀아볼 배짱이 있다면, 능숙한 연주자처럼 텐션을 가지고 놀아보자.(수필/음악)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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