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늦은 나이에 적을 두고 공부하던 부산대학교에서 만난 송충이들 이야기다.
전날 ‘는개’라고 할 만한 이슬비가 내리더니, 그날은 화창한 초여름 날씨를 보여주었다. 개교기념일이라 대학원 수업이 휴강이어서 한적한 교내를 여유롭게 누볐다. 수더분하면서도 간만의 여유가 있던 그즈음 내 눈에 자주 띄는 것이 송충이였다. 학교 전체에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내가 애용하는 야외 자판기 옆에도 단풍나무를 비롯해 여러 그루 심어져 있어 쉽게 송충이를 볼 수 있었다.
그날도 찬란한 역광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단풍나무 한 나무를 올려다보았는데, 여기저기 가느다란 가지와 짙은 녹색의 잎사귀 근처에 무척이나 많은 송충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개별 생활을 좋아하는지 같은 곳에 두세 마리가 있는 경우는 없고 서로서로 떨어져 있었다. 낮잠을 자는지 움직이는 기미가 안 보였다.
그 아래 흙바닥을 내려다보니 거기 송충이들은 땅 위와 벤치 주위를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었다. 송충이 한 마리가 벤치 끝에 다다라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절벽 끝에 가 있는 것이라 하겠는데, 갑자기 몸을 뒤집어 던지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다 놀랐다. 떨어지고서도 주행 본능이 있는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마주 오고 있는 동료 하고도 아는 체하지 않는다.
가끔 송충이가 거미줄 같은 외줄에 매달려 있는 것도 보게 된다. 마치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손에서 거미줄을 벽에다 내뿜고 그걸 의지해 내려오는 것처럼. 그렇게 땅바닥까지 내려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기어간다. 또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줄 타고 내려온 것을 후회하는지 자기 몸에 이어진 줄을 몸을 웅크려 잡아당기며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중고등 학생들이 운동장 놀이터에 있는 동아줄 타고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자기 처소가 나무이니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점심으로 부산대학교 근처의 명물인 길거리 토스트 가게에서 토스트와 생과일주스를 사서 학교 안 한 나무 밑 돌 벤치에서 먹었다. 일부러 뜨거운 햇볕을 쬐면서 내 몸이 ‘광합성’ 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기분 좋게 일어나 멀찌감치 있는 휴지통으로 가는데, 언뜻 보니 내 바지에 송충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그 송충이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나무에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송충이를 내 바지에서 종잇조각으로 옮긴 다음 그 종잇조각을 어느 한 나무의 키 낮은 나뭇가지에 갖다 댔다. 그런데 떨어뜨리듯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송충이의 의사(意思)를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속으로 ‘올라가도 돼’ 하면서. 과연! 조금 기다리니 나무 냄새를 맡은 그 송충이는 이내 자신의 의지로 종이에서 나뭇가지로 올라탔다. 그리고 웅크리다 뻗다 하면서 계속 위로 올라갔다. 송충이도 자기 의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원래 살던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로 오게 된 것이니 나는 송충이를 이사시킨 셈이다. 그날은 개교기념일이자 스승의 날이자 내겐 ‘송충이의 날’이었다. 글을 쓰면서 ‘송충이’를 검색했는데, 온통 송충이 방제 방법만 소개돼 있어서 참고 안 하기로 했다. 송충이가 단풍나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니 그것만 믿기로 했다.
이 글 보시고 여름날 송충이 만나시거든 가만가만 앉아서 그 귀여운 움직임을 지켜보시길. ‘송충이’ 하면 연상되는 ‘징그러움’이라는 뉘앙스만 뇌리와, 마음의 ‘인상 목록’에서 소거시키면 이 녀석이 무척이나 신기한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혹 몸이나 소지품을 타고 있으면 몹쓸 귀신이라도 붙은 듯 소스라치지 말고, 가만가만 살펴보고서 조심스레 나뭇가지로 돌려보내시기를. 송충이 한 마리의 일생이 조금 더 길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