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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Aug 14. 2019

조조할인

여름휴가가 절정에 달한 요즘 나는 거의 매일 오후 늦게 중부 고속도로를 탄다. 녹음도 절정을 뽐내고 있는 산들과 너른 하늘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는 일은 기대를 품고 가는 걸음이다.    


그런데 일하러 가는 걸음이다. 이달부터 물류센터에서 야간 택배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용직이어서 나가고 싶은 날만 나가도 되고, 다음날 급여가 통장에 들어와 바로 요긴하게 쓸 수 있어 좋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을 비롯해 근처 지방 도시에서 전세 셔틀버스를 타고 경기도 모처의 한 물류센터로 모인다.       


지난 겨울에도 내내 이랬다. 그땐 다른 회사의 물류센터였고 일이 무척 고됐다. 장갑을 끼긴 했지만 부르튼 손으로 쉴 새 없이 무거운 택배 물품을 대형 트럭에 가득 채우는 일은 깡마른 체구의 내겐 너무 버거웠고 그래서 자주 아팠다. 그래도 일주일에 2~3일 출근해 일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 빠른 배송을 위해 사전에 작업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경험했다.   

  

지금 일터의 일들은 그보다 노동 강도가 덜하고 다양해서 간혹 쉬면서 매일 나갈 수 있을 정도다. 가벼운 몸으로 출근해서 무거운 몸으로 퇴근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열흘쯤 지나니 많이 여유로워졌다. 신기한 것은 고속버스 창밖으로 녹색으로 짙게 물든 산야를 매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행 떠날 때의 혜택을 일터로 가면서 누리고 있다. 피곤해서 잠을 잘 때가 태반이지만 이 바깥 풍경 덕분에 출근길이 윤택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겨울 때는 그렇지 못했다. 황량하고 메마른 산에 시선이 많이 가지 않았다. 두꺼운 옷을 입고 힘든 일을 하러 간다는 생각에 똑같이 고속도로를 타고 있어도 마음이 편치 못했더랬다.    


퇴근 무렵인 새벽 5시 전후, 같은 셔틀버스 창밖으로 밤새 어둑신한 잠자리에서 자던 산들이 옅은 서광에 자극돼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비가 오는 날 빗방울들이 창에 다닥다닥 달라붙고 안개가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간간이 창밖을 내다보면 여행지 시골에서의 야릇한 기분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런데 몸은 밤새 땀에 흠뻑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고 난 상태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는 집배원들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물을 수없이 마셔도 그렇다. 일터에는 선풍기는 물론 식염포도당 알약과 얼음물까지 비치해 놓고 있다. 열대야로 많은 이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에 열대야는 안중에도 없이 많은 이들이 무더위 속에서 일한다.     


피곤해진 몸이라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버스 안은 취침 장소가 돼버린다. ‘눈물’이라는 글에서도 자세히 언급했지만, 피곤 때문에 하품을 많이 하고 그 덕에 눈물이 흘러나오는 생리작용은 여전하다. 겨울 때보다는 덜하지만 줄기차게 하품을 하고 그 자극에 눈물을 흘리며 피로를 덜어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한 시간 가량 지나 서울에 도착해 밝은 새벽을 맞는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운 좋게도 며칠 전 내가 앉은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맞은편 낮은 산 위로 해가 뜨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버스 한 대를 부러 보내며 보았다. 특별한 장소는 아니더라도 일출을 보며 퇴근하는구나 싶었다.     


몇 정거장 안 가고 자리도 넉넉한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카드를 요금 단말기에 대면 찍히는 금액 960원. 조조할인이다. 서울시에서 아침 6시 반 전이면 일반 시내버스를 1200원에서 20퍼센트 할인된 금액으로 탈 수 있다. 괜히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버스에서 내려 간간이 상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는 시장 길을 지나 얼마 전 새로 옮긴 원룸으로 지친 몸을 들인다. 샤워하고 아침밥을 차려 먹는다. 소화될 때까지 매트리스에 등을 대고 누워 뉴스를 보거나 생각과 메모를 한다. 창밖으로 시든 호박 덩굴 잎들이 서걱거리는 소리, 옆방과 복도에서 출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을 청한다. 조조할인이 끝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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