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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Aug 22. 2019

쩍 갈라져 있었다. 오른발 새끼발가락 밑이. 통증이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연고 발라 나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정형외과로 갔다. 그리고 네 바늘을 꿰맸다. 사실상 올여름은 끝났다는 기상예보가 나오기 전날이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작업하느라 너무 많이 걸어서였던 게 분명하다. 조금 천천히 일해도 되는데 눈치 볼 줄, 잘 쉴 줄 몰라 열심히 발품을 팔았던 것이다. 미련하게도…… 그 바람에 이번 주 아르바이트는 공치게 되었다.     


올봄과 여름엔 참 많이 걸었다. 여행지에서 풍경 바라보며, 일터에서 물건 옮기며 마냥 걸었다. 평소에도 내가 하는 운동은 걷기가 유일하다. 걷기의 아름다운 형태인 산책을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수확도 있지만 내 몸도 조금은 균형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내 오른발이 수난에 빠져 걷기가 힘들어졌다. 습진과 타박상에다 꿰매기까지 했다. 간호사는 내 오른발 새끼발가락에 깊숙한 털모자 마냥 붕대를 씌어주었다. 그나마 작은 부위라 앙증맞아 보인다.      


얼마나 일을 쉬어야 하는지 처치를 끝낸 할아버지 의사에게 물었더니 더 열심히 일하라고 강권하신다. 예전에는 이런 상처로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소싯적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다행이라 여기며 병원을 나왔다. 그런데 쩔뚝거리는 데다 발걸음이 느려지다 보니 안 보이던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사 온 동네의 집들 벽면으로 한가로움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느리게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았다. 오래전에 경험한 아련한 순간,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무료함의 순간이었다. 왜 그렇게 빨리 걸으며 살았는지. 강제로 나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을 풍경.     


의사의 말이 생각나기도 해서 동네를 더 걷기로 했다. 가게 인테리어도 살짝 엿보고 안 가던 길로도 가보았다. 내쳐 마트에 가서 생필품도 사 오기로 했다. 마트에서 나오는데 아뿔싸, 마취약 효력이 떨어지더니 이내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에 가는 길이 멀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겨우 들어와 하루를 통증 속에서 지냈다.     


다음날 새 신발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내 발을 편하게 해줄 새 운동화를 사기로 한 것이다. 먼저 들른 정형외과에서 할아버지 의사는 일을 나갈 수 없다고 엄살을 떠는 나에게 다시금 아플수록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하신다. 모를 일이지만 그냥 체념했다. 신발 매장에 들러 고르고 골라 마음에 드는 하얀색 운동화를 샀다. 칙칙한 색의 신발만 신다 보니 환한 색을 고르고 싶었다. 고생한 내 발에게 좋은 신발을 선사했다. 특히 오른발에.

   

3일째 되는 날,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 주말에 여행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인데 다행이다. 새 운동화 신고 갈 생각을 하니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들뜬다. 평일 열심히 일하고서 여행 가려고 했는데, 공치고 여행가게 돼서 씁쓸하다. 다음 주에 할아버지 의사 말처럼 열심히 일하면 되지 뭐, 했다. 이번 여행지에서는 어떤 것이 내 '엽서하기' 글의 씨앗이 돼줄지 기대해본다. 올여름의 마지막 여행이면서 막 시작된 가을의 첫 여행이 되겠다. 올 가을에도 내 발은 많이 걸어다닐 것이다. 여행하고 일하고 산책하면서. 다만 조금 천천히 걸을 생각이다. 한가로움이 다시 나를 찾아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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