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링링'이 서울을 향해 북상하던 날, 야간 택배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이 끝나면 그동안 미뤄왔던 검사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밤을 꼬박 새운 상태이지만 집에 돌아와 잠시 머문 뒤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핸드폰은 놔두고 대신 수첩과 펜을 호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무언가 적을 게 있을지 몰라서.
지방간이 있어 초음파 검사와 간 기능 검사를 1~2년에 한 번씩 받고 있는데 그 검사를 하고자 한 것이다. 내가 간 병원은 2차 의료기관이라 피검사 결과가 한 시간 반이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잠시 쉰 다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간 상태가 1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고 간수치도 정상이라고 했다. 놀랍고 반가운 결과였다. 의사는 다행스럽다는 표정으로 설명하면서 주의사항도 덧붙여 주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병원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이 토해내는 바람 때문에 거대한 먹구름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커피가 생각나 900원짜리 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행동도 느릿느릿해졌다. 지하철 역사 내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때 ‘광역철도노선도’가 눈에 들어왔다. 명칭이 그렇지 수도권 지도나 다름없었다. 서울에서 경기도 모 도시의 일터까지 내가 타는 셔틀버스가 가는 코스를 자세히 짚어보았다. 시내 도로에서 내부순환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긴 코스를 따라가 보고서 내가 이런 길을 통해 출근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벤치에 앉은 다음 수첩과 펜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끼적였다. 커피를 마시며, 지하철을 여러 대 보내며 메모를 했다. 그런 나 자신이 신기했다. 지하철 역사에서 글을 쓰고 있다니. ‘불매운동’에 따라 진하게 나와 잘 쓰던 일본산 검은색 펜을 구입하지 않고 있어 대신 집에 있던 역사 깊은 ‘모나미 153’ 볼펜을 가지고 나왔다. 생각 외로 술술 여러 페이지를 가는 글씨체로 쓸 수 있었다. 그런 적이 드문데 늘 남기던 테이크아웃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썼다. 만약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다면 어땠을까. 순간 손에 핸드폰이 있으면 인터넷 유람을 할 게 뻔하고, 책이 있으면 책을 읽게 되고, 수첩과 펜이 있으면 메모를 하게 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메모 기능이 있어도 핸드폰으로는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을 적지 못했고 그렇게 적는 게 귀찮게 느껴질 때가 흔했다. 그러나 수첩 메모는 즉시 이루어진다. 붓 가는 대로 펜이 간다. 아무 생각이든 나오는 대로 적을 수 있다. 여행 때는 물론 평소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수첩과 펜이 가방에 들어 있다. 가방 없이 나온 이날 그렇게 메모하다가, 내가 흘러가는 시간을 천천히 가라고 붙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주 귀하게 쓰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다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을 듬뿍 선사받은 기분이었다.
이왕 나온 김에 발 상처의 실밥을 빼러 정형외과로 향했다. 지하철 역에서 바깥으로 나와 보니 얼굴 크기의 플라타너스 잎들이 거리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큰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기도 했다.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편 바람은 거센데 비는 거의 오지 않고 조금 더웠다. 마른 태풍이다. 천천히 걸으며 북상하고 있는 태풍의 존재를 재차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만난 정형외과 할아버지 의사는 실밥을 뽑고서 이제 안 와도 된다 하셨다. 새끼발가락에 모자 같은 붕대도 씌어주지 않는다. 정중히 인사하고 나와 기분 좋게 산책로를 거닐었다. 나비 한 마리가 보였다. 문득 나비는 이 세찬 바람을 어떻게 견딜까 궁금증이 생겼다.
핸드폰 대신 수첩과 펜을 가지고 나와 좋은 경험을 했고 이 글은 그 덕에 탄생했다. 물론 핸드폰이 없으니 길가의 풍경 사진도 없다. 앞으로도 자주 핸드폰을 오프 시키고 수첩을 손에 쥐어야겠다. 그러면 계속 시간을 붙잡을 수 있겠지. 지금 시간을 긴하게 누리는 행위, 핸드폰이 쉬고 나도 눈과 마음을 쉬게 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