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쓰기와 글자 만들기

by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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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한국시집박물관> 바로 옆에 <여초서예관>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서예가 김응현 선생의 업적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건축물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곳이었다. 서체가 중요하다 보니 ‘화장실’에도 이곳만의 서체가 담겨 있어 흐뭇했다. 이곳에서는 ‘서확행’(書確幸)이라는 제목을 단 서예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소확행’을 본 따 만들었을 것이 “글씨로 만나는 확실한 행복”이라고 부제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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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 선생의 작업실을 재현한 곳이다. 문인의 집필실과 달리 서예가의 작업실은 이렇구나 싶었다. 호 ‘여초’(如初)를 나는 초심을 쭉 유지하자 식으로 해석하고서 내 해석을 자랑삼아 확인하려고 학예사에게 물었더니 아주 간단명료하게 ‘처음처럼’이라는 답변이 날아왔다. 잠시 내 모습이 궁색해졌다. 우연히 이날 동료에게서 ‘처음처럼’ 소주 두 병을 건네받았다. ‘여초 소주’ 마시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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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서예관>에서는 각자 붓으로 자신이 생각해온 문구를 한지에 캘리그래피 식으로 써서 내고 준비해온 사진 이미지를 카톡으로 제출하면, 나중에 우편으로 글자와 사진이 들어간 컵을 보내주는 단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을 고장과 같이 홍보하기 위해 “인제는 캘리그래피 시대”라는 기발한 문구를 만들어놓았다. “인제는 인제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나는 “행복한 낭만주의人”이라고 캘리그래피 문구를 써놓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료 중 한 명은 자신에게 한껏 자유를 주며 키워주신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자신도 딸을 잘 키워 시집보냈고, 이제 5개월 된 손녀를 자랑한다. 내게 손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녀가 쓴 “우리집은 작은 천국”이라는 캘리그래피 문구는 비단 손녀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삶의 배경에서 나온 듯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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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목적지인 <박인환문학관>을 찾았다. <박인환문학관>은 규모는 작았지만 나와 동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시인의 50년대 활동무대를 드라마 세트장처럼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운영한 서점 ‘마리서사’, 빈대떡집 ‘유명옥’, 술집 ‘포엠’ 등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그 시대 풍경을 연출했다. ‘마리서사’가 단연 인기가 높았다. ‘마리서사’의 한자어 ‘茉莉書舍’를 간판으로 달아놓았는데 내 생각으로 ‘茉莉’(정확히는 ‘말리’이다)는 박인환 시인이 좋아한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의 ‘마리’(Marie)를 한자어 중 뜻은 상관없이 소리가 가장 비슷한 한자어 중 골라 지은 것 같다. 이런 방식을 ‘가차’(假借)라고 하던가. ‘書舍’는 원래 “선비들이 공부하는 집”이라는 뜻인데 오늘날의 서점을 멋지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명동백작’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멋진 작명이다.


인제에서 범접할 수 없는 서체들을 보았고 평소에는 하기 힘든 색다른 글씨 쓰기를 해보았으며 글자(말) 만들기 풍경을 즐겼다. 내 브런치북 제목의 ‘엽서하다’도 인제 여행 덕택에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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