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도 휴양림이 있다. 정확한 명칭은 다른 곳과 달리 ‘공주산림휴양마을’이다. 2016년에 문을 연 최신식 휴양림이다. 내가 묵은 ‘산림문화휴양관’ 숙소 화장실에 비데가 있을 정도다.
2019년 7월 초였다. KTX 공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 내린 다음 금학동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서 주미산 쪽으로 올라갔다. 산 입구에 ‘금학생태공원’이 있다. 다음 날 내려올 때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공원 입구 너른 텃밭엔 해바라기가 주를 이루면서 송엽국, 코스모스, 금계국이 사이좋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 위로 나비 두 마리가 서로 애무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두 나비의 애정과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10층 아파트 높이까지 비상했다. 그걸 지켜보고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특이하게도 공원 주위로 두 개의 호수가 아랫목, 윗목을 차지하고 있다. 이름하여 ‘아랫수원지’, ‘윗수원지’. 드넓은 ‘아랫수원지’에서는 아늑함이 느껴졌고, ‘윗수원지’에서는 울창한 숲 덕분에 고고함이 느껴졌다. 두 곳 모두에서 숲이 호수를 뒤덮듯 펼쳐놓은 그림자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다음날 내려올 때에는 휴양마을에서 습지대 생태탐방로를 따라 내려와 ‘윗수원지’에 도착했다. 2018년 환경부는 이 지역의 산지 습지(‘아랫수원지’와 ‘윗수원지’)와 고비 군락지를 보전하고 도롱뇽 서식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벌였다. 혼자 습지대를 내려와 바라본 호수 ‘윗수원지’는 비경(祕境)이라 할 만했다. 올라올 때 본 어둑한 시간 때의 모습과는 느낌이 달랐다. 숨어 있는 별천지를 발견했다고 말해도 되리라.
늦은 저녁 시간, 아스팔트 길을 돌고 돌고 올라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계룡산 봉우리 이름을 딴 걸로 보이는 ‘삼불봉’이라는 방 벽에는 특이한 도표가 붙여져 있었다. ‘공주시 인구시계’다. 2019년 5월 말 현재 4월보다 45명이 증가했다고 나온다. 공주시 인구가 10만여 명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지방에서 자기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소식이겠지만 10만 명은 적은 숫자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인구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공주의 시인 나태주 시인은 <마음의 땅>이라는 시에서 “공주는 공주에서 사는 사람조차 그리운 고장”, “공주는 공주사람 아니어도 살고싶은 고장”이라고 공주를 칭송했다. 2박 3일을 머문 나도 공주는 그렇게 정이 가는 곳이라 고백할 수 있다.
다음날 아침 휴양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자생식물원’을 둘러보았다. 달맞이꽃도 약초로 소개하는 ‘약초원’, 초롱꽃이 잔뜩 피어 있는 ‘야생초화원’을 거쳐 ‘덩굴식물원’의 덩굴 터널을 지나갔다. 재미있게도 덩굴 가지를 빨래집게로 울타리 철망에 고정시켜 놓았다. 터널 입구에는 자귀나무 꽃이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며 부드러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화목원’ 길가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있을 때다. 저만치 한 나무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한참을 머물렀다. 반갑게도 날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 위쪽은 하얗고 얼굴은 검었다. 몸통은 황색, 꼬리도 황색이었다. 마치 꼬마애가 두 손을 배에 갖다 대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처럼 몸짓을 하며 울었다. 10분인가 새와 나는 무언의 대화를 하며 서로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순간 욕심이 났다. 새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글 속 사진으로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갖다 대니 새는 여지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새는 자신에게 카메라나 핸드폰을 갖다 대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으면서 우를 범하고 말았다. 허망했다.
나중에 신문기사(‘새에게 사진가는 접근하는 포식자’(한겨레신문))를 보고 알았다. 살금살금 접근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가들을 발견하면 새들은 금방 자리를 뜬다고. 사냥총처럼 생긴 망원 카메라, 셔터 소리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고. 카메라를 갖다 대는 사진가들의 행동이 새들의 번식에 영향을 끼친다고도 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랫동안 새와 눈빛을 주고받고 기분 좋게 헤어지는 경험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리고 새가 싫어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함을, 새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함을 배웠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6월 강원도 정선 읍내에서 만난 제비들이 내 주위를 쏜살같이 지나치곤 했던 것은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근처 둥지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