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휘몰아친 태풍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은 전라도 지방 농민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지면서 그전에 갔다 온 여행 경험담을 소개한다.
초가을이 된 8월 말, 나를 비롯한 문학기행 식구들은 고속도로라는 혈관을 따라 우리 몸의 발끝까지 내려갔다. 발끝(땅끝)까지 가면서 창밖으로 우리 몸 구석구석이 괴사한 곳 없이 푸르게 푸르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몸은 살구색이지만 우리 영토는 녹색이다. 녹색의 긴 산맥과 산자락이 녹색의 논을 치마폭처럼 펼쳐놓고 생명소인 산소를 마음껏 품어내고 있었다. 우리 몸의 피부와 같은 하늘이 그 산소를 받아 푸르고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여섯 시간을 안락한 기분이 들게 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녹색의 대지와 푸르고 하얀 대기를 바라보며 해남 땅끝마을로 내려갔다. 윤선도 문학기행이다.
기행하며 한 매 끼니 식사는 전부 꿀맛이었다. 남도의 푸짐하고 별난 음식을 정말 오래간만에 맛보았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젓갈이었다. 내 입이 흥분해 내 손으로 하여금 그 짠 반찬에 연신 젓가락을 갖다 대게 했다. 첫째 날 점심으로 비빔밥과 같이 나온 강된장, 고추, 마늘, 고추장 등 나는 자연식의 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저녁식사 때의 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회 안주 덕분에 잎새주 소주는 달았는데, 또한 달디 단 바닷가 공기 덕분에 취기도 쉽게 사라졌다. 둘째 날 점심때에는 깡마른 나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건네주는 이들이 있어 고맙게 포식할 수 있었다. 내가 식당 자리에서 제일 늦게 일어났을 거다. 왜 그렇게 허기가 지는지 아침에 전복죽을 두 그릇 먹기도 했다. 그래서 8월 땀 흘리다 마르게 된 내 몸이 살을 찌우고 윤기를 내는 기행이 되었다.
해남의 윤선도 유적지 중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은 일반인에게 잘 개방되지 않지만 우리는 특별히 관람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짧아 잘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나는 녹우당을 지키는 진돗개 닮은 개와 잠시 친교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순하기도 했지만 개를 좋아해 다가가는 나를 짖지 않고 맞이해 주었다. 개는 내 손을 핥았고 나는 개의 얼굴과 몸을 정성껏 매만져주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순한 개들을 많이 만났다. 흑구, 백구, 황구 등 개줄에 묶여 있고 깨끗하지 못하지만 도시의 얌체 같은 개들과는 달리 순했고 지나치는 사람은 많이 보아도 왜 그런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부러 찾아가 만나고 어루만져주곤 했다. 정작 보아야 했을 윤선도 고택의 건축미는 잘 보지 못하고 개만 만나고 온 녹우당 출입이었다.
우리가 땅끝마을에서 노화도(보길도)까지 가고 오면서 승선한 배는 우연하게도 똑같이 ‘드림장보고호’였다. 대형버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품에 안고 힘든 기색 없이 바다를 유유히 헤쳐 나갔다. 불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너른 품새와 안정감을 장보고호는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배를 잊고 해가 구름과 애무하며 내붓는 빛줄기를 감상하고, 녹색의 바닷물 염기가 밴 바람을 마음껏 마시며 다도해의 신비로운 군도를 바라보았다. 바다 기운이 우리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뭍에서의 옹졸함을 잊게 해준 덕분에 나는 현실과 떨어진 상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30분이면 짧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항해 시간이어서 두 번의 승선 경험은 딱 알맞은 양만 소화 잘 되게 먹은 영양가 많은 식사 같았다.
한 선배가 강하게 추천해 찾아간 보길도 망끝전망대에서의 낙조 관람은 성공이었다. 구름의 기세가 강해 체념하려 했지만, 미리 도착한 우리들에게 해는 찬찬히 석양의 장관을 그림자극 막 뒤의 배우처럼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들 감탄하면서 자신을 그 풍경 속에 넣으려 애썼다. 우리에게 자기만의 전매특허인 일몰을 보여준 해는 이제 지구 반대쪽 사람들에게 일출을 보여주러 가겠지. 그렇게 해는 쉴 새 없이 달리고 달린다.
이튿날 새벽 여섯 시. 무겁지 않은 머리로 잠에서 깨어 파도소리를 들으며 채비를 한 다음 완도군 보길면 중리 마을을 혼자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인기척은 드물고 어느 집 마당 한가운데 누렁이도 머리를 앞다리에 배고서 잠을 자고 있다. 바닷가 동네에 어울리게 매서운 바닷바람을 막아줄 장치를 창에 덧댄 오래된 집들이 이방인을 맞이해준다. 해수욕객이 다 떠난 시절의 마을은 이제 한산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농어촌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서 시간표와 행선지를 써놓은 안내지를 보았다. 보길도에서 가야 할 만한 관광지는 다 거치는 듯했다. 혼자 여행하는 나에겐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안내지이지만 이 먼 곳에서의 혼자 여행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이럴 때 기행반과 기행 버스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윤선도가 여생을 보낸 보길도 내 ‘부용동'은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이라는 뜻으로 직접 붙인 지명이다. 섬 가운데 산으로 둘러싸인 부용동에서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을 둘러보았다. 산꼭대기 윤곽선 같은 나무들을 바라보고 엉뚱하게 그 너머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은, 윤선도가 세상을 등지고서 가고자 했던 제주도 말이다. 가끔씩 하늘을 오고 가는 항공기들이 제주도행, 제주도발임을 짐작하면서.
‘낙서재’는 책을 즐기는 곳이자 부용동에서 어머니 뱃속 탯줄 자리 같은 곳이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자 ‘동천석실’은 사색과 휴식 장소이다. 윤선도는 자신이 지은 낙서재에서 동천석실을 바라보고, 또 동천석실에서 낙서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만든 요새인 이 부용동을 가꾼 감회를 어떻게 말했을까? 임금보다 더한 복과 부를 누리며 왕국을 세운 기분은 어떠했을까? 아이디어는 자신이 창안했지만 노비 수백 명이 그 아이디어 따라 손품과 발품을 팔아 만든 이곳에서 자기 말고 다른 이들 또는 훗날 후손 말고 외지인들도 멋진 유람을 하게 되리라 염두에 두었을까? 기행 오기 전, 도서관에서 대출한 『윤선도 평전』을 읽기 전, 물론 금쇄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그저 소박하게 쓴 거라 생각한 <오우가>가 금쇄동과 부용동에서의 거대한 작업이 수반되면서 지어진 시조임을 알게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튀어나왔다.
한국의 3대 민간 정원 중 하나인 ‘세연정’은 인공미가 더 물씬 풍기는 곳이다. 표지판을 보니 ‘세연’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고 쓰여 있다. 윤선도는 이곳을 너무도 멋지게 조성했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운치를 더하고 있다. 세연정 내 같은 이름의 큰 정자 세연정은 사계절을 머무를 수 있고, 연못을 비롯한 정원 풍경을 사방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내부 방 구조가 독특해 신발 벗고 들어가 앉아 보았는데 시를 읊으며 덕담을 나누는 사대부 마냥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윤선도 기행을 하면서 관련 지역의 안내를 받으면서 딴짓, 딴생각도 했다. 내가 잘하는 짓이다. 그렇지만 딴짓과 딴생각은 경험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약방의 감초 같다. 그러고 보니 성품 때문에 한양 조정에서의 활동과 거리가 멀었던 윤선도가 부용동을 조성한 것도 딴생각에서 비롯한 거대한 딴짓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