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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Nov 12. 2019

밤의 시간들

“오늘날 가로등을 켠다는 것은 별이라는 등을 끄거나 별이 총총한 하늘에 창문을 다는 것과 같다.”


요즘 번역하고 싶은 책으로 살펴본 프랑스 지리학자 사뮈엘 샬레아의 책 『밤을 구하라』(Sauver la nuit)의 메시지다. 이 책은 도시의 빛 공해로 어둠이 사라져 갔고, 어둠이 사라지면서 생명체에게 무수한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저자는 심각한 현재 상황을 전한다. “세계 인구의 83퍼센트와 미국 및 유럽 인구의 99퍼센트는 빛 공해로 얼룩진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 이 빛 공해는 1년에 6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밤마다 별 보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기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어둠을 어떻게 되찾을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빛 공해를 줄이려는 ‘별하늘 찾기 운동(Dark-Sky Movement)’과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     


나는 밤에 일한다. 『밤을 구하라』의 저자가 구해내고자 하는 밤에 일한다. 물류센터에서 밤새 택배 주문물품을 챙긴다. 수만 가지 물품 중에 고객이 주문한 것을 카트에 담기 위해 밤새 축구장 넓이보다 넓은 창고 3개 층을 돌아다닌다. 밤새 돌아다니면 무척이나 다리가 아프지만 대신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하고 마치 수행하는 느낌까지 든다. 여행지에서 걷는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번역할 때와는 다른 신선함을 경험한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고될 때가 많지만 밤에 깨부산히 움직인다는 점에서 나의 실존 감각에 불을 밝혀주기도 한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고.


물류센터는 물건들의 천국이다. 생활용품부터 도서, 전문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웬만한 사람들이 잠든 시간, 그 사람들이 낮에 받아볼 물건들을 챙기다 보면 밤은 빠르게 지나간다. 사람이 잠을 자고 있을 때에 몸속에서는 아침에 깨어나 잘 활동할 수 있도록 피로해진 몸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밤새 골라 모은 물건들은 낮에 어느 누군가에게 전해져 일상생활에 활용될 것이다. 이런 ‘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이쪽 일을 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앞으로도 번역 일이나 원서 검토 작업이 없는 날에는 계속 밤의 세상에서 살 것 같다.


그런데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식사시간이다. 육체노동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시간이다. 평소보다 먹는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짜 기다려지는 시간. 식사 후 잠시 건물 밖에 나와 바깥의 밤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경기도 외곽지역이라 내 눈 앞에는 넓은 하늘과 빈 공간이 놓여 있다. 어둡지만 달빛 아래 산자락이 보이고, 읍내에는 작은 건물들의 불빛들이 깔려 있다. 산 중턱 건물 주차장에 서 있는 나는 이곳에서 밤에만 맛볼 수 있는 시원한 밤공기를 마신다. 밤공기에는 나를 들뜨게 하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기대를 갖게 하는 고유의 내음이 배어 있다. 이곳의 밤공기는 깨끗하지는 못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정갈한 밤공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또 저 아래 먼발치 내가 탄 셔틀버스가 지나왔고 퇴근 후 지나갈 영동고속도로를 내려다본다. 밤에도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 고속도로를 바라보면 아련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내 마음은 벌써 여행지에 가 있다. 아주 짧은 시간 그렇게 위안을 받고 다시 일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지난해 작고하신 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늘 밤에 일하셨다고 한다. 글을 쓰신 것이다. “어둠 속에서 불을 얻어온다”라고 하셨단다. 요즘 그분의 책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있다. 이 책 속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 산문에서 황현산 선생은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라고 말하면서 낭만주의 이후 시인들의 고단하고 엄숙한 작업을 찬탄한다.



위에서 언급한 『밤을 구하라』의 저자는 사람들에게 ‘어둠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말한다. 어둠이 있어야 아름다운 별 세계를 올려다볼 수 있고,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저한 어둠이 있다. 소설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는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을 딱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어둠의 구체적인 메시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1만 2천 매의 원고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혼불』을 쓰는 시간 작가에게 어둠과 같았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5년 전 『혼불』열 권을 읽을 때는 기막힌 삶의 애환을 다룬 내용 때문에도 애가 탔지만 그걸 다 읽어내는 일 여간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시간도 어쭙잖게 내겐 어둠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 어둠을 부러 갈구했다. 이 어둠 덕분에 작가의 ‘제 고향 땅의 모국어’가 빛을 발할 수 있었고 『혼불』이라는 대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밤에 대한 글을 썼다. 이 글을 올리고 나는 여행을 떠난다. 이 글과 맥을 같이하는 여행이다. 바로 어둠이 깊고 밤하늘 별을 잘 볼 수 있는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의 밤을 누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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