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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Nov 09. 2022

밤 그림자와 낮 그림자

시간표를 포스트잇에 메모해 두고 핸드폰 케이스에 꽂아두었다. 입동 다음날이자 보름인 날의 개기월식 일정을. 그리고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차 안에서 부분 월식부터 볼 생각을 했다. 웬걸, 요즘 들어서 출근하는 사원이 많아져 버스 창가 좌석이 꽉 찼다. 달을 보려면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남행하는 버스의 왼쪽 좌석에 앉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남자 사원 옆 통로 쪽 자리에 앉았다.      


부분 월식 시작이 여섯 시 9분인데 버스 주행 중인 시각이다. 경기도 광주를 지나면서 졸고 있는 사원 옆 창가 밖을 기웃거렸다. 어제처럼 먹구름이 잔뜩 껴 달을 보지 못할까 노파심이 들었다. 눈치를 보며 몇 번 기웃거리다 드디어 왼쪽 아래가 멍이 든 것처럼 검은 흔적을 지닌 보름달이 보였다. 마음이 동했다. 나로서는 매일 새벽에 보는 밤하늘의 별들과 행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어서, 오늘같이 드문 하늘의 진풍경을 알려주는 일을 참기엔 인내심이 아주 적다. 결국 버스가 물류센터에 가까워지기 전 졸고 있는 사원을 깨어 달을 보게 했다. 뜻밖에도 옆 사원은 오늘이 그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센터에 도착하니 달은 이미 사과를 살짝 한 입 베어 먹은 정도의 크기만큼 검게 잠식되고 있었다. 월식을 처음 본다는 동료도 있었다. 나는 출근 절차를 밟고 일곱 시 근무 시작 전 마음껏 야금야금 갉아 먹히는(?)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3분의 1 이상 먹힌 달을 보고 센터 안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부지런히 일한 뒤 월식 시간표를 알고 있는 나는 8시 조금 넘어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센터 밖 옥상 주차장으로 나갔다.      


아! 나는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 월식 절정의 순간을 조금 넘겨 왼쪽 부분이 살짝 되살아나기 시작한 순간을 볼 수 있었다. 달이 시커멓게 사라지는 순간 말이다. 달 표면 대부분은 검게 가려져 있었지만 짧은 시간에 본 것이라 완전한 흑색이라기보다 짙은 회색 섞인 먹구름이 달을 가리고 정지한 것 같아 보였다. 사실은 붉은색이라 ‘블러드 문’이라 부른다. 월식의 달은 지구 본체로 인해 일부 또는 전체가 가려진 상태, 즉 지구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는 달이기에 그림자 본래의 옅은 어둠을 나타낸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며 위치가 달라지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태양빛을 반사한 모습이다. 그러니 그림자가 아니고 시일도 여러 날 걸린다. 월식은 지구 그림자가 가린 달의 모습이다. 그래서 하룻밤 몇 시간 이내에 달은 없어졌다가 이내 형태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구름이 산 능선을 타며 그림자를 만들되 그 그림자가 천천히 옮겨지듯이.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거대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은 후광을 자기 온몸을 통해 그림자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기댈 대상은 우주 속에서 달뿐이라는 것. 태양은 지구를 비추며 지상에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구름 그림자, 사람과 건물 그림자. 내가 좋아하는 잎그림자 등등. 밤이 되면 지상에선 가로등, 조명등을 비롯한 인공 불빛이 태양 시늉을 내며 이런저런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태초부터 위용을 자랑한 태양이 서운해할 정도로 24시간 지구상엔 태양과는 별개의 그림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들썩거린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는 달이 역할을 대신한다. 빛은 약하지만 어둠 섞인 그림자를 만들어준다. 어둑신한 밤에 달빛은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에게 그림자를 선사한다. 또 조명 강도를 달리 함에 따라 밝음이 달라지는 스탠드처럼 모양에 따라 밝음의 정도가 달라지는 달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 뒤로 길이가 짧고 둥그스름한 그림자를 밝기 별로 붙여 준다. 그래서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세상에 환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뜻하여서, 망(望)의 보름달과 반대인 삭(朔)이 돼 달빛이 사라질 땐 그림자 없는 무서운 암흑이 된다. 별은 아무리 세게 빛나도 너무도 먼 곳에 있기에 그림자를 만들 여력을 갖추지 못한다. 몽상만을 만들어줄 뿐이다.     

 

지구 그림자를 벗어난 달은 원래의 밝고 환한 보름의 달로 되살아났다. 식사 무렵 10시 그리고 오늘 퇴근 후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사방에 안개가 꼈어도 먹구름이 물러난 덕택에 보름달은 제 밝기를 다 발휘했다.    

  

그런데 이 달빛의 근원 역시 태양이다. 태양은 워낙 거대해서 낮뿐만 아니라 태양이 우리 눈에 숨겨진 순간인 밤에도 달에 빛을 선사한다. 달빛은 태양빛의 반사 빛이다. 그래서 세상의 원동력은 태양이 영원토록 보내준 빛과 열기에서 비롯한다.      


밤에 숨겨진 태양이 아니라 낮에 드러난 태양이 선사한 독특한 그림자를 소개하겠다. 위 사진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대청댐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호수 건너편으로 어슷하게 비껴져 있는 두 산자락이 자기 크기만큼의 분신을 대청호 호수에다 만들어 놓고 있었다. 산이 호수에 비친, 거기다가 산 색깔이 그대로 밴 이 물 위 형체도 그림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물에 비쳐 나타나는 물체의 모습”이라고 두 번째 뜻풀이가 나와 있으니 그림자가 맞다! 저물고 있을망정 태양이 있어 가능한 호수면 수채화이기에 ‘천연색 그림자’라고 이름 붙이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만들어보는 데칼코마니이자 아름다운 피사체였다.      


‘그림자’ 하면 어둠, 어두운 마음 구석, 우울해 보이는 낯빛, 암울한 역사 등을 연상시키는 것이 보통이고 적확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구가 자기 존재를 온몸으로 알리는 절호의 기회인 밤 월식의 그림자와, 천연색의 낮 호수 그림자 같은 적극성과 밝음의 그림자도 있음을 이번에 깨달았다.      


어둠의 그림자도 달리 생각할 수 있다. 고정된 인공 불빛이 근처에 고정된 사물을 밤새 비출 때 그 그림자는 밤새 그림자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빛의 주체 또는 객체가 움직일 땐 그림자는 영원하지 않다.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고 달도 공전을 하므로 월식의 그림자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월식이라는 이름 따라 달이 갉아 먹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요즘 고민되거나 숙제 같은 일들이 지나고 보면 하나씩 해결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하찮고 자잘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내 고민이 깊어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그러지 않아도 해결될, 그저 조금씩 노력하고 참으면 아니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해결될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퇴근 후 글을 쓰다 보니 보름달은 사라지고 날이 밝았다. 나는 암막커튼과 수면 안대라는 그림자 도구의 도움을 받아 잠을 자게 될 것이다. 개기월식을 통해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 밤 그림자와 낮 그림자를 같이 생각해보았다. 낮에 꾸는 꿈을 몽상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말했다. 수동적인 밤의 꿈과 별개로 능동적인 상상력의 꿈을 말한 것인데, 나는 밤에 깨어 있는 채 이런 상상들을 한 것이어서 몽상을 한 것이라 말해야 맞겠다. 낮의 그림자가 밤의 그림자에게 자리를 넘겨도 몽상은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그림자에 긍정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은 몽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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