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책걸상

by 박태신

함양의 상림이나 정선의 가리왕산 숲속을 갔다 오고도 남았을 삭막한 심정의 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먼 곳이지만 나에겐 안식처 같은 곳이기에 찾아간다. 언제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 터.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 폼’이 수반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감내하는 것이야 일상이 되었지만 확진자 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제지하기 힘들 정도로 내 마음에 발동이 걸리면 짐을 챙기게 되겠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숲을 찾아가는 걸로 대신 해갈하기로 했다. 태릉이 그곳이다. 어렸을 때 소풍이나 야유회로 흔하게 갔던 곳이고, 그땐 숲속 잔디밭이 식사와 놀이 장소로 이용되곤 했다. 오래전부터 숲이 몸살을 앓지 않아도 돼 정갈해진 태릉을 이번 여름과 가을에 세 번 찾았다. 노원 구민이라 자그마치 50퍼센트(500원) 입장료 할인을 받고 들어갔다.



숲이 이룬 궁륭 밑을 걸으며 이름은 모르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꽃과 나무 앞에 멈춰 서곤 했다. 낙엽수와 달리 침엽수와 상록수는 1년 내내 조금씩 낙엽이 진다고 하는데 그 모습도 보았다.


이런 국릉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선한 거리두기 푯말을 휴대폰에 담기도 했다. 거대한 왕릉 주위도 거닐었다. 사람 발길이 드물어 생긴 한적함이 이곳의 풍토가 된 듯싶었다.


뜻밖에도 숲속 빈터에서 책걸상을 발견했다. 등이 없는 기다란 벤치 한가운데에 덧붙인 일체형 책걸상이다. 신기한 마음에 그곳을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나무가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고, 숲이라는 최상품 공기청정기가 쌩쌩 돌아가고 있으며, 새들의 울음소리가 저만치 차도의 자동차 소리를 잊게 해주었다.


두 번째 방문 땐 그 책걸상에서 메모를 하고 있는데 아주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내게 다가왔다. 곤충이 두렵지 않고 내 이전 글들에 사마귀, 송충이, 자벌레와의 조우 경험담을 실은 적이 있는 나는 이번엔 거미와 잠시 정을 나누기로 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손가락을 갖다 대 올라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건지 철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거미도 내 손가락에 올라탔다.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거미를 팔에 옮겨 타게 하기도 했다. 안경을 벗고 거미와 눈을 마주쳤다. 거미도 자기 앞의 거대한 존재가 신기한지 연신 내 눈에서 자기 눈을 떼지 않았다. 10여 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이별했다.


사실 지난 1년 여 동안 울창한 숲을 많이 만났다. 아예 정글이라 해야 맞겠다. 바로 번역을 통해서다. 아마존을 비롯해 세네갈, 중국, 미국, 브라질 등의 숲속과 정글 속으로 몇 세기 전 식물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식물을 탐사 채집해 가는 여정을 나도 뒤따라갔다. 식물학자들은 정글을 헤맸지만 나는 외국어와 외국 문명이라는, 어찌 보면 정글보다 더 험악한 숲속을 헤매고 다녔다. 사전은 기본이고 온갖 자료를 뒤지며 정확하고 적확한 뜻을 찾고, 잘 이해될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고 다듬었다. 나의 한숨은 식물학자들의 한숨과 같았다. 한껏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저자가 말하는 숲에 대한 철학과 식물학자들의 섬세한 시선을 알음알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식물학자들의 삶과 식물 연구를 다룬 나의 번역서가 드디어 발간되었다(<보따니스트>).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손에 쥐고 뿌듯해 했다. 그간의 고생은 이 책을 집으면서 사라졌다. 강렬한 원색의 표지가 내 시선을 잡아당겼다. 고맙게도 정말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나의 이전 브런치 글 ‘동네 식물학자’의 장본인 신혜우 작가가 추천사를 써주었다. 최근에야 출판사에서 의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4월 말 세밀화 전시회가 끝난 뒤 발간된 신혜우 작가의 <식물학자의 노트>를 읽은 뒤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올린 적이 있다. 별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함구하다가 책이 나온 후 감사 인사 겸 이런 사실을 메일로 알렸다.


그리고 따끈따끈한 내 번역서를, 기념 삼아 따끈따끈한 삼겹살과 차가운 소주를 곁들여 먹으며 읽었다. 여러 번 벼린 글이라 진력이 날 법도 하지만 기분 좋게 오래오래 훑어보았다.


상림이든 가리왕산이든 태릉이든 나는 또다시 숲을 찾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숲의 전경을 즐겨 바라본 후, 숲에 들어가 일그러진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피톤치드를 쐬고 느닷없이 나타나는 곤충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식물의 세계에서 나를 해독시킨 후 인간의 세계로 돌아올 것이다.


요즘 밤마다 규모는 작지만 사람과 상품이 뒤섞인 정글 같은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정글 속에서 크든 작든 초목들이 상생하며 숲의 생명을 지속시키듯, 사원과 사원끼리 역할을 분담하며 친분도 쌓으며 센터의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습관 삼아 식사시간이 끝난 뒤 그리고 퇴근할 때 새벽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 며칠 전 퇴근시간에, 지난겨울 수없이 보고 보았던 겨울철 별자리 오리온자리를 발견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새벽 시간 오리온자리 허리쯤에 있는 삼태성을 찾는 소일거리가 생겼다. 그러면서 다시금 예전 식물학자들처럼 꿈을 꾼다. 외롭더라도 새로운 정글(내겐 번역서)을 찾아간 뒤 그 숲속 책걸상에 앉아 식물학자들처럼 헤매는 일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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