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끝나는 새벽 4시, 물류센터 밖에 생각지도 못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꼭 일주일 전 1월 25일 화요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신난다” 소리치니 동료사원이 웃어댔다. 맨 얼굴로 눈을 받았다. 잠시 함박눈 알갱이에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다. 맛보기용으로 나온 음식처럼 30여 분밖에 내리지 않았지만 삭막한 야간 노동에 지친 마음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셔틀버스로 서울에 도착한 다음 동료들에게 “화이트 화요일! 메리 화요일!”이라고 농을 쳤다. 반응이 썰렁했다. 꼭 한 달 전 크리스마스 땐 눈이 오지 않아 해본 소리라고 둘러대니 고개를 끄덕인다.
섣달그믐날 그러니까 까치설날인 어제 부모님 댁에 갔다. 저녁식사 후 동생과 같이 장을 보러 나왔는데, 아파트 주차장 바닥에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었다. 동생이 오늘밤부터 눈이 올 거라고 했다. 일기예보를 안 봐 모르고 있었다. 차도 한쪽엔 제설차가 가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일주일 전 눈 오던 날이 생각났다. 설날에 눈이 오는 거네라고 생각하니 조금 흥분되었다.
부모님 댁 내 방에서 동생과 23살 그리고 고 1 되는 동생 조카 둘 이렇게 넷이서 20년도 넘어 낡디 낡은 둥그런 밥상을 중심으로 술자리를 마련했다. 명절 전날의 우리 삼형제 풍경이다. 막내네 식구는 코로나 상황 대비책으로 일요일에 미리들 왔다 갔다. 둘째 동생 조카들과의 술자리는 처음이다. 어리기만 했던 조카들이 이제 술도 고개를 돌려 마실 줄 아는 성인이 돼 있었다. 서먹서먹하기만 했었는데, 조카들과 긴 시간을 정겹게 대화 나누고 술을 따라 주고 했다. 첫째 조카의 피부는 눈처럼 하얗다. 올해 팔순 되시는 어머니께서 우리 모습이 흐뭇하신지 연신 안주거리를 가져다주셨다. 창밖을 열어 보니 어느새 눈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화이트 설날을 맞이했다.
이런 날엔 순수한 우리말인 ‘설날’의 ‘설’을 ‘눈 설(雪)’ 자로 바꿔도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길조로 여긴 까닭에 까치에게 설날을 부여한 것처럼, 내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눈은 길한 존재다. 눈이 내리면 무언가에 억눌린 마음이 풀어지고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다. 하얀색을 바라보는 눈(眼)도, 어두운 색을 짊어진 마음도 휴식을 취한다. 윗면에 장식이 전혀 없는 흰색 아이스크림 케이크처럼 평평하게 쌓인 눈 위를 내가 첫 사람이 돼 밟으며 뽀드득 소리를 낼 때는 뭔가 귀한 것을 독차지한 느낌이 든다.
눈은 하얗다. <스노우 화이트>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불어 원제목은 <Blanche comme neige>이다. “눈처럼 하얀”이라는 뜻 그러니까 ‘백설(白雪)’이고 이 영화는 동화 ‘백설공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의 역할을 하는 신부가 백설 같은 여주인공에게 권하는 말은 늘 용기를 준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성 아우구스티누스).
설날 아침 세배를 드리고 나서 하얀색의 떡국을 먹었다. 점심도 그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 글을 썼다. 원래는 제목을 지난주의 경험 이후로 ‘메리 설날’이라 정하고 글을 쓸 생각이었다. 속으로 설날에 눈이 오면 구색이 갖추어질 텐데 했다. 그런데 진짜 눈이 왔다. 덕분에 덜 고민하며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레드와인을 즐긴다. 작년엔 레드와인만 마셨다. 그런데 오늘은 글을 올리고 화이트 와인을 사 와 마실 생각이다. 안주는 마트에서 파는 하얀색 크림소스가 섞인 파스타와 하얀색의 미니 닭가슴살. 전자레인지만 돌리면 혼술 만찬 준비는 끝. 이 음식과 눈이 요즘 회색투성이인 내 마음을 조금 하얗게 해주었으면 한다. 끝으로 설날이 가기 전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화이트 설날! 메리 설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