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형이상학

by 박태신

문이 쿵쾅거리고 살짝 열어 둔 창문으로 휘파람 소리가 느닷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기술 좋은 엔지니어도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 그런 소리에 귀가 얇은 나는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 바람이 낮은 데로 내려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내는 소리였다. 태풍이 지나갈 때의 형국.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장대비와 달리, 지상에서 위아래와 사방을 가리지 않고 요동치는 송곳 바람은 사실 높은 하늘에서 거대한 비구름 떼를 밀어대는 본류 바람에서 가지 쳐 나온 것일 게다. 장마가 소강상태일 때 거의 온 하늘을 뒤덮다시피 한 흰구름과 먹구름을 빠른 속도로 밀어대던 바람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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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잠시 멈췄지만 바람은 시원스레 불던 어제 새벽녘, 소거된 빗소리 덕분에 들린 것이지만 잎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속에서 수십 마리는 될 듯한 참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퇴근 시간 긴 줄을 선 사원들 목소리처럼 들썩거렸다. 제비들처럼 번듯한 단독주택이 없는 참새들은 도심 이곳저곳에 남루한 둥지를 만들어 번식하기 일쑤이지만 이런 나무나 덤불 또한 잠을 자는 안식처여서, 빗줄기가 거센 시간에는 이곳에서 몸을 한껏 움츠리고 물기를 떨구며 물의 중량감을 덜어낼 것이다.


비를 좋아하는 무리는 단연 개구리들이다. 장마 첫날 장대비가 내렸는데 센터 근처 논밭에서 개구리들이 세상을 점령한 듯 유난스럽게 울어댔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나는 그 소리가 싫을 수가 없어 귀 기울여 듣곤 했다. 그런데 참새를 비롯한 새들도 바람과 비를 좋아하지 않을까. 부러 인적이 드문 개울가를 찾아가 간단 목욕을 할 필요도 없고, 산책로 바닥에 멋모르고 기어 나온 지렁이 같은 맛난 먹이들이 풍성해질 테니까.


아침이 되고 바람 소리가 잦아들면서 도심의 소음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바람소리는 소음이라 할 수밖에 없는 도로 위의 자동차 소리를 묻어버리는 순기능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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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뒷집 옥상 텃밭이 탐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토마토, 호박, 깻잎, 상추 등 주인장 할머니가 매년 내게 보여주는 시골 풍경이다. 올핸 접시꽃도 처음 보았다. 할머니의 정성이 지극해서 그렇지만 비와 바람이 잦은 요즘 이 식물들은 연신 흔들거린 덕택에 잘 자라난 것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우리 몸도 온몸 스트레칭을 해야 건강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자의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이 바람이라는 요가 선생을 만나 줄기와 가지를 단련시키고 있다. 열매가 튼실할 것은 여부가 없겠고.


밤새 탈진 직전까지 센터 사방을 돌아다닌 나는 긴 휴식을 취하고 잠에 들었다. 오늘 생각하니 어제 새벽 잠시 들춘 책의 내용들도 식물의 줄기를 뒤흔든 건강한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싶다. 어제는 고단함으로 인해 물기 없는 잠에 푹 빠져 지냈는데, 오늘 대기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멈췄다 하면서 위의 게릴라성 바람을 맛보게 해 주었다. 쉬기로 마음먹은 오늘, 그 바람 덕분에 브런치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었다. 저녁엔 내가 애주하는, ‘세 가지 바람’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 ‘트리벤토’라는 아르헨티나 와인과 함께 보내며 6월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바람(소망)은 간절해야 이루어지듯 장마 바람 부는 날에, 텃밭 식물들처럼 튼실하게 살고 싶은 마음속 바람도 간절해지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낯간지럽게도 이전에 쓴 내 브런치 글 중에서 문단 하나를 통째로 옮겨본다.


바람은 ‘바라다’의 준말 ‘바람’(希)과 동음이의어다. 어원적으로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둘 다 방향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람’(風)은 공기의 움직임이고 ‘바람’(希)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바람(風)은 고기압 지대에서 저기압 지대로 분다. 공기가 공기 많은 곳에서 공기 적은 곳으로 옮겨가는 흔적이다.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다. 바람(希)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상태다. 그렇게 원하는 이의 삶이 나름의 균형을 이루었으면 하는 것이다. 바라고 노력한다. 그래서 바람(風)과 바람(希)은 명사의 형태를 띤 동사다.<‘바람과 바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