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공존

by 박태신

하늘이 두 쪽으로 나뉜 것 같았다. 왼쪽은 먹구름, 오른쪽은 흰구름이다. 오전 11시쯤이었던가. 당일보다 이틀 전 비를 세차게 내려 보낸 비구름이 소진된 후에 생긴 구름들이라, 빗방울을 만들 정도로 수증기가 차 있지 않은 구름들이다. 그렇지만 대기를 뒤덮은 두 구름대의 면적은 넓었다. 내 방 창으로 그 두 세력이 대규모로 맞닿아 있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보았다.


비가 내리려면 구름 속 작은 물방울들이 과밀하게 밀집되고 응결돼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빈틈없이 승객이 가득 찬 출퇴근 시간 때의 지하철 객차 안을 연상해 보자. 무더운 여름날 이런 만원 상태에서는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사람 몸’에서 비롯한 습기와 ‘사람 마음’에서 비롯한 짜증으로 인해 불만이 고조되기 쉽다. 이럴 때 환승역에 열차가 선다. 내리는 승객이 많으면 이내 한숨을 돌릴 수 있지만 반대로 타는 승객이 많으면 이내 더 가쁜 숨이 되고 만다.


시내 중심을 통과하고 나서 다수의 승객이 내린 뒤라야 열차 안은 여유를 찾게 된다. 시내 중심 역에서 내린 다수의 승객을 바로 비구름에서 쏟아져 내린 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구름은 수증기가 가득한 상승기류(공기의 상승 흐름)로 생긴다. 지하철로 치면 출근 시간 또는 토요일 오전과 같이 유동 승객 수가 최고조로 달할 때이다. 그렇게 지상에서 증발한 물인 수증기는 하늘을 두루 돌아다니다 적당한 때 응결해 물로 다시 내려온다. 퇴근 무렵 그리고 주말이 파할 무렵, 여독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지하철로 귀가할 때 또는 차로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면서 도심으로 몰릴 때와 똑같다.


수증기의 상태가 달라서 색깔이 다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창을 열고 흰구름과 먹구름이 공존하다가 경계선이 생기는 모습을 발견하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잠잠하던 경계선상에서 작은 흰구름 조각구름이 먹구름에게 흡수되는 모습을 보았다. 이윽고 먹구름이 기세를 가해 접근했다. 흰구름 영역을 조금씩 먹구름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두터운 먹구름은 햇빛도 가리면서 영역을 넓혀나갔다. 최전선의 먹구름 조각이 흰구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흰구름은 무방비로 침범을 당하는 듯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가 잠시 후 다시 창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그런데 흰구름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먹구름 경계면에 균열이 생겼다. 한번 기세를 잡은 흰구름은 각개전투를 벌이며 먹구름을 내몰기 시작했다. 경계 뒤쪽의 먹구름 영역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래도 최전선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이윽고 그 경계면 위쪽으로부터 흰구름의 호위를 받으며 햇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먹구름은 햇빛을 차단하고 간섭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흰구름은 햇빛을 받아들이고 우리 눈이 따가워지지 않게끔 자외선만 막으면서 햇빛을 통과시킨다. 우리 눈은 전통 부채 속 일정한 간격으로 끼어 있는 대나무 살 같은 햇살 가지를, 또는 틴들 현상으로 무대 위의 주인공을 비추는 다수의 직선 조명 같은 햇살을 보기도 한다. 그 햇살을 나도 보았다. 이내 경계선에서는 흰구름이 승세를 이어갔다. 하늘은 먹구름도 섞여 있지만 보기에 평화로운 상태가 되었다.


나는 이 흰구름 먹구름의 무용담 현장을 지켜보면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상황을 떠올렸다.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경계를 침범하고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려 할 때부터가 생각났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했으나 우크라이나군은 북쪽의 침범 세력 러시아군을 막아내고 몰아냈다. 어깨에 얹은 재블린 미사일 포로 수많은 탱크를 박살내고 여러 수단으로 러시아 공군 전투기를 큰 숫자로 격추시켰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이후 러시아군은 기세를 돌려 우크라이나 동쪽과 남쪽을 장악하고 합병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군은 빼앗긴 영토를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내가 요즘 관심을 두고 보는 뉴스는 치기 어린 정치판 뉴스가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격퇴하면서 승전보를 이어가는 뉴스다. 나는 속으로 우리나라 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것처럼 흥분하며 기사를 읽어나가곤 한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전에 같은 공화국연맹에 속한 두 국가는 이후에도 친밀감을 유지하는 편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두 국가는 관계가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독재자가 만들어낸 슬로건이 주된 역할을 하며 지금의 지옥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전쟁은 내가 본 것처럼 흰구름이 이기는 쪽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양 국가와 국민들의 정체성과 역사를 이해하려 애쓴 내용을 담은 책이 최근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기회가 돼 <우리가 형제였던가?>라고 내가 제목을 달고 약간의 정보만 살펴보았는데, 저자의 노력이 전쟁이 끝난 후 앙금을 씻어내는 데 도움이 될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어제 백기를 들고 투항한 러시아 장갑차 군인들처럼, 뚜렷한 명분 없이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낱같은 희망이 들기도 했다.


하늘을 다시 보니 흰구름과 먹구름이 뒤섞여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색깔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 다음날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