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다. 거꾸로 가는 시계는. 순댓국집 이 시계는 시침, 분침, 초침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시계 방향’과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방향도 시계 반대 방향이다. 보통 영화나 상상 속의 타임머신은 몇년, 몇십 년은 훌쩍 넘어 날아다니는데, 이 시계는 현실과 똑같은 속도로 똑딱똑딱 역행하는 아주 지루한 속도의 타임머신이다.
그런데 이 시계를 자세히 보면 숫자판이 거꾸로 나열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숫자 모양새도 좌우로 뒤집혀 있는 숫자판 위를 시침, 분침, 초침이 거꾸로 돌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와 ‘거꾸로’가 어울려 결국 정상으로 작동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cannot put back the clock”(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라는 문구를 자기 몸에 새겨 놓고 있다. 이 문구 또는 경구를 강조하려고 역발상의 시계를 만든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왕이면 문구도 거꾸로 새겨놓지……
오늘 한 스마트폰 폰케이스를 보았는데 거기엔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평범한 말이지만 왠지 좋아서 몇 번 더 읽어보고 소리 없이 읊조리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하루 동안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살기 일쑤인데 거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문구였다. 거꾸로 가는 시계가 각성을 일깨우는 벌칙의 성격을 지녔다면, 이 문구는 다독임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겠다. 나는 후자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2. 천장
《내 몸은 내가 지킨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셀카를 지나치게 좋아하면 행복을 해치고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SNS를 즐기는 사람은 보통 자신이 잘 나온 사진을 중심으로 올리기 쉬운데, 그러다 보면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말이다. 현실은 괴롭고 슬플 때가 많은데 그런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셀카 촬영의 색다른 방식을 발견하고 흐뭇해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셀카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방향을 내 쪽으로 돌려야 하는데, 이때 내 모습을 넣지 않는 것이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카페 사진을 찍다가 순간 카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을 셀프 모드로 해놓은 다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레 천장이 카메라에 잡힌다. 손으로 휴대폰을 이리저리 움직여 괜찮은 천장 포즈가 나오면 그때 셔터 버튼을 눌렀다. 대신 나의 얼굴이나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손으로 들고 찍지 않고 탁자에 정지된 채 놓여 있는 휴대폰은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삼각대에 고정된 휴대폰과 다를 바가 없어서 사진은 선명하게 나온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셀카 촬영을 자주 활용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렇게 찍힌 사진들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때문에 별들과 태양계 행성은 위치가 변동되지만 바로 이 순간 바라보는 별과 행성은 정지 상태다. 그걸 바라보면서 나는 행복과 신비를 느낀다.
웬만한 카페들은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고 천장도 예외가 아니다. 콘크리트 노출 기법으로 공사 때의 생얼을 그대로 살린 카페도 많다. 분위기 있는 전등은 기본이다. 사실 이전 글에 소개한 ‘표준 커피’ 카페에서 푹신한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다 천장을 ‘발견하고’ 처음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푹신한 소파는 선물이고, 천장 보기는 나의 해찰하기의 산물이다.
제주도에서 김포공항으로 저공비행하며 착륙 준비하는 비행기 안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도심 거리는 참 앙증맞다. 큰 건물이나 아파트는 장난감 세트 같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조그마한 세계에서 고민들을 우주만큼 커다랗게 키우며 또는 있는 힘껏 다투며 살고 있음을. 별들은 그런 사람들이 가득한 지구를 안쓰럽게 보고 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면서 나와 동상이몽의 사람들을 어느 정도 객관적 시각으로 내려다보는 경험을 했다. 창가 좌석에 앉아 수지맞은 장사를 했다.
카페의 천장은 무수한 사람들의 대화를 가감 없이 들을 것이다. 카페는 일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아늑하고 근사한 곳이라 대화 내용도 셀카 사진 같은 포장된 것일 때가 많지만, 수심 깊고 비밀스러운 대화도 터놓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별들이 지구인들을 대하듯 천장도 입은 봉한 채 그런 대화들을 들을 것이다. 그런 천장을 휴대폰으로 찍어댔으니 내가 들른 카페의 천장은 화들짝 놀라기도 했겠지만 그것도 잠시, 자기를 발견해 준 것을 기껍게 여겼을 것이다.
3. 껌
현실적인 것과 반대인 모습과 시선을 발견했다. 덕분에 생각의 외연이 넓어졌다. 그런데 그 외연은 자꾸 나를 안위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말라고 경종을 울리는 역발상의 시계가 신기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며 사는 것으로 마음의 정점을 찍었다. 한편 셀카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셀카를 통해 나 아닌 색다른 존재 천장을 발견했고, 그 천장을 별과 동일시해 보았다. 그리고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되 나를 보듬는 쪽으로 마음을 줄 수 있었다. 요즘 치아 건강을 위해 껌을 자주 씹는데, 어느 껌 종이에 쓰인 문구도 한몫을 한다. “뭐가 제일 중요한지는 나 자신이 제일 잘 알아요.” 단물을 죄다 빼앗기고 버려지는 껌이 나에게 남긴 가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