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을 좇는 시점에서 이미 출구는 닫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입구도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온 나는, 여느 현대인들이 그렇듯 단 한숨도 쉬어간 적 없이 살아왔다. 쉬어갈 핑계도 없었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어느 순간부터 어떠한 무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나를 상상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은 줄 알았던 나였지만 어느샌가 모임의 장을 맡고 있거나, 등 떠밀려 나온 척 완장을 차고 있었다. 어떤 집단이든 모임의 중심에 있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도 딱히 나서서 이끌고 가려고 하지는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도 단 한순간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은 없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차마 미술을 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술학원을 다녔던 학창 시절부터. 그렇게 소망하던 미대에 입학했지만 정작 재료비가 없어 유화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소묘만 끄적이며 "나는 소묘가 적성에 맞아" 라며 나를 속이던 시절도. 결국 버티지 못한 채 군대라는 도피처를 찾아 휴학을 했던 와중에도 나는, 단 한순간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편의점, 일식집, 옷 가게, 상하차. 막일, 피시방, 패스트푸드, 술집, 안 해본 업종이 없을 만큼 돈이 되는 것이라곤 무엇이든 했다. 우스운 건, 그렇게 목숨 바쳐 쉬지도 않고 전전하며 벌어다 받쳤던 미술을 이제는 등져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돈 때문에 등진 것은 아니다. 돈, 돈 하며 살아봤자 남는 건 인색함 밖에 없다는 것을 느껴 이제는 그다지 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에게도 늘 하는 말로 "재밌는 일을 찾아라. 그게 오래간다."인 만큼, 나는 지금 재미를 찾아서 살고 있다.
늘 그래왔다. 알바를 2개, 3개, 야간에도 쉬지도 않고 일할 때도, 돈을 벌었던 이유는 오로지 재밌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재밌는 걸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하려면, 그만큼의 여유가 필요했으니까. 학창 시절 그렇게 염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바꿔버린 것은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2n 년을 살아오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은 없었는데, 저 쪽 세상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무언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흥미를 잃어버렸다. 미술을 가르친다며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아무렇게나 저질러 놓은 결과물을 달콤한 말로 속여 학부모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나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돈을 벌어왔지만, 그렇게 금전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미술을 등졌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내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순간이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달리고 있다 보면, 꽤나 많은 것에 의지하게 된다. 어쩌면 항상 어딘가에 속해 있고 싶었던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만 이렇게 바쁜 건 아닐 거야.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닐 거야. 너도 나와 같잖아." 라며 공감을 얻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다 보면 대체로 결말은 실망하거나 진절머리 나기 일쑤였다. 딱히 좌절하지는 않았다. 실망은 잠깐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은 바쁘고 명확했으니 나는 내 갈길을 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속해 있던 몇 개의 집단 중, 하나 둘 정도 사라지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리면서도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어지간한 일들을 무던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도 무수히 많은 경험들이 날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큰 걱정을 느낄 이유조차 없었다. 복잡하다던 사람과의 관계 역시 딱히 깊숙이 박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니 그렇게 얽히고설키더라도 초연한 내가 있다면 나를 흔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마주하게 되면 막막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해야 이 일을 `해결` 할 수 있을까에만 온 정신이 쏠린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항상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들쑤시며 다니는 사람이기에 딱히 무언가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 되지 않은 일이 있으면 온 신경은 그곳에 집중되어버린다. 몸은 길치라 물리적인 길은 자주 잃어버려봤지만, 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마치 미로에 빠진 것 같다. 그래서 싫냐고 묻는다면 전혀. 오히려 이 해답을 풀 수만 있으면 오히려 돌아올 성취감에 기대감만 부풀어 오른다. 분명 힘들고 지치는 것은 맞는데도 불구하고, 또는 마법처럼 하늘에 날 수 있어서 바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헛된 망상도 하면서 싫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러는 동안 정작 눈앞의 길만 좇고 있는 사이, 내가 빠진 미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벗어나기 위해 테세우스의 손에 들렸던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이 내 손에도 들려있었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것은 미궁 속 괴물을 쓰러트리고 다시 미궁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한 실이었다.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아주 얇고 희미한 이 붉은 실의 역할이 절대 그런 용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아주 작게나마 비치는 이 작은 불빛이 길을 잃은 내게 희망인 듯, 길라잡이인 듯,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점이 궁금하다. 궁금해서 계속 쫓아만 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내가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어찌 됐든 앞으로 계속 나가야 할 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 혼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걸어가면서도, 바람이 불 때마다 흐려져 가는 이 얇은 실이 혹시나 끊어질까 바둥거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한 번 브레이크가 걸린 순간이 찾아왔다.
마치 적색 점멸 신호 앞에 멈춰 서서,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듯이 멈춰 서 있다.
당신에게 가는 길목 교차로에 멈춰 서서, 저 멀리 보이는 목적지 앞에 서서
당신과 나 사이를 횡단하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잠깐 멈춰서 있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는 와중에도, 와이퍼는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정신없이 닦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