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분명 맛이 있다.

당신은 제 글에서 어떤 맛을 느끼고 있나요?

by brwitter

대학 시절, 한창 `예술 뽕`에 취해 있을 무렵, 술도 들어갔겠다, 대학 동기와 함께 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했던 얘기다.


"글에 맛이 있다니까?"

"네가 그러니까 살이 찌는 거야."


돌아오는 답변은 평범한 인신공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글에는 분명 맛이 있다. 남주와 여주 간의 연애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면, `달콤한` 연애이야기. 눈물이 줄줄 흐르는 인간상을 그린 이야기에는 `짠내 나는` 인간 극장. 혹은 `씁쓸한` 이야기 등... 분명 우린 이야기를 말할 때 맛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가 선호하는 글의 취향으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나는 담백한 글을 좋아한다. 전달해야 할 말들을 간결하고 깔끔하게 전달하는 글을 좋아한다.


"OO이 글은 담백해서 좋아."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었던 그 한 마디가 내 취향을, 글 쓰는 버릇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저 내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놓고만 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글을 썼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인정(人情)을 나눴다. 진정한 의미의 인정(認定)이 아닌, 그저 따뜻한 정을 나눴다. 그것이 우리들끼리 글을 쓰고 읽고, 즐기는 한 방식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그러다 보니 각자 서로 다른 맛의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이라는 도구를 선택했다. 항상 중구난방에 우유부단하고,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 사납게 나돌아 다니는 나를 진정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글에서 느껴졌던 맛은... 짬통...? 에 가까웠다. 갖가지 인용문과 관용구로 점철되어 있는, 도저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짬통이었다. 기승전결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좋은 건덕지자, 핑곗거리가 만들어졌으니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담백한 글". 그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담백한 글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미는 절대 없다.
단지,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담백한 글"이라는 말로 함축되기엔
진짜 담백하게 작성된 명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되어하는 변명이다.


담백하다. 좋게 말하면 담백한 것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밍밍하다." 무슨 맛을 내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도록 간을 빼버렸다. 진짜 하려고 하던 말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한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더니 짠맛이 나 물을 타버렸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더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아 잔뜩 졸여버렸다. 그 사이 재료들이 모두 물러 터져 원래 무슨 식감인지 느껴지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있다.


"난 담백한 글이 좋아."

"응, 그건 나도 그래. 그래서 OO 작가님 글이 너무 좋아."

"아..."


글이라는 도구를 선택한 이유부터가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까? 나는 생각보다 남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 읽더라도, '이 사람은 나와 생각이 많이 달라.'라며 관심 없다는 듯 슥슥 넘겨버린다. 가끔, 아주 마음에 쏙 드는 글을 보게 되면 한 번쯤은 더 뒤돌아 보고 읽게 되는 적은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을 아주 맛있게 읽어 가는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글을 읽으면서 무슨 맛을 느꼈나요?


"당신은 제 글에서 어떤 맛을 느끼셔서 이렇게 제 요리를 찾아오셨나요?"


어쩌면 이미 답은 나와있을지도 모른다.


"OO이 글은 담백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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