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강사 아니랄까 봐...
어젯밤, 동네 친구들과 갑작스럽게 모임을 가져서는 오랜만에 신나게 볼링을 치고 오니 온 삭신이 쑤신다. 운동이라곤 숨쉬기와 8시간 동안 떠들기 밖에 안 하는데 갑자기 온 전신을 쓰는 운동을 했더니 골병이 난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즐겁게 떠들고 놀았더니 잔뜩 신은 나더라. 그래, 사람이 사람을 좀 만나고 그래야 활기도 돌고 하는 거지.
그렇게 쑤시는 삭신을 이끌고,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점심시간 강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곤, 커피 한 잔을 위해 걸어가던 중, 먼저 화두를 던져보았다. 나를 포함한 셋 중, B 강사를 제외한 둘은 활동적인 일은 전혀 안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돌아온 답변은 꽤나 의외였다. 볼링 이야기에 흥미를 보인 것은 나와 같이 집돌이일 거라 생각했던 C 강사였기 때문이다.
"강사님들 혹시 볼링 쳐 보셨어요?"
"쳐보기야 했죠? 강사님은 몇 점 정도 나오시나요?"
"저는 어제 해 봤는데 100점? 90점?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마지막엔 손에 힘이 다 빠져서 60점 나왔습니다. C 강사님은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 교내에 볼링장이 있어서 동아리 활동 좀 했습니다."
"오오..."
그렇게 운을 띄운 C 강사는 돌연 볼링 강의를 시작했다.
"강사님들, 볼링공 쥐는 법 아십니까? 볼링공에 손가락을 넣을 때 엄지를..."
강의장에서 카페까지 걸어가는데 드는 시간은 약 10분. 셋다 키가 크다 보니 성큼성큼 걸어가는데도 10분씩 걸릴 정도로 카페는 거리가 있었지만, 강의는 끊이지 않았다. 볼링을 드는 법부터, 던질 때의 자세와 같은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해서는 급기야, 신체 구조 이야기까지...
"... 이제 그렇게 하면 인체 구조상 팔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은 확실한 공대생이 맞다.라는 확신이 드는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지던 중, 볼링공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잠깐, 흐름을 뺏어봤다.
"볼링공을 선택할 때는 이제 무게뿐만 아니라 구멍의 크기도 생각하셔야 하는데..."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네요. 볼링공 고를 때, 무게만 고르면 될 줄 알았는데, 거기에 손가락 크기까지 맞춰서 넣어야 한다니... 근데 그거 무게에 따라서 구멍 크기가 다른 거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전 그냥 무게 맞는데 구멍 큰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어어, 맞습니다. 저도 그래서 매번 공이 손에서 빠져서 고생했습니다."
"아닙니다! 공의 무게도 다르지만 같은 무게라도 구멍 크기가 다 달라서 내 손에 딱 맞는걸..."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그렇더라. 공의 무게만 맞는다고 해서 다 되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건, 공의 무게와 손에 맞는 공 찾기에서 시작한 사색을 정리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가볍게 쓰라는 게 가벼운 주제로 무거운 이야기를 쓰라는 게 아니야."라고 누가 잔소리를 할 것 같지만...
사람도 각자마다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질량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그리고 그 무게는 상황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친한 사람을 대할 때의 무게와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을 대할 때의 무게는 분명 다르다. 나는 그렇다. 그러다 보니 그 분위기 차이에 적잖이 당황하는 경우도 맞이해 봤고, 때로는 더 정겹게 맞이해 주는 경우들도 보았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를 테니 그렇겠지. 나는 대체로 비즈니스로 만났을 때의 모습보다, 사적으로 만났을 때 더 정겨워지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이 사람, 이런 모습도 있었네? 같은 것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분위기에 이끌리거나, 분위기에 취해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거지?'
'맞지, 그게 모든 걸 대표하지는 않을 텐데, 보통은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사람의 첫인상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듯이, 그런 변화가 있는 사람들에게 주로 끌리게 되는 것 같다. 근데 그렇게 정의해 놓고 생각해 보니, 사람이란 게 보통 비즈니스적으로 만났다는 걸 떠나서, 그냥 아직 친하지 않을 때와 친해지고 나서의 차이는 보통 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맞다고 하더라도, 그 무게감과 함께 또 여러 가지 면들이 맞물려야 딱 맞다!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분위기 말고 떠 어떤 것들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분위기라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해서 그렇지, 대체로 성향이나 성격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거지?'
'그렇지. 근데 성격!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걸 포괄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자면 더 많은 것들도 있겠지. 근데 일단 비교 대상이 잘못된 것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를 볼링공과 너의 손에 맞추려는 거. 그거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아냐?'
'어?'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반박해 보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애초에 완전히 딱 맞는 공을 찾는 것과 두루 함께 지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를 정해진 칼럼에 맞춰 딱딱 끼워 넣는 스타일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그럼 나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데 한 가지만 보고 판단할게 아니라 다방면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맞춰가면서 친해지고, 그러면서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토론도 해가면서 지내고 싶다는 매번 하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겠지. 단지 그걸 내가 어제 볼링을 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볼링공을 들여다보다 보니 무게랑 손에 맞는 공 찾기가 마치, 무게만 가지고 공을 찼던 과거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대인관계에 대한 정의를 다시 고쳐보겠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겠지. 좋은 소잿거리를 찾았다는 생각.'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쯤, C 강사의 강의가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이제 볼링을 칠 때는 항상 공을 열심히 닦게 되었습니다. 전까지는 잘 안 닦고 쳤거든요."
"오호, 다음에 볼링 치러 가면 한번 적용해 보겠습니다. 근데 그럼 C 강사님은 보통 몇 점 나오시나요?"
"저요? 저 평균 100점입니다. 저 이론은 빠삭한데 잘 치지는 못합니다."
누가 강사 아니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