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
장황하게 허무하던 비극이 아닌 소소하게 찬란한 희극이 될 수 있기를
최근 들어 카페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해야 할 일이 특별히 갑작스럽게 늘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급한 일들은 강의가 시작되기 전 모두 끝마쳤다. 사무실에서는 작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짐을 싸고 부랴부랴 출장지로 떠나온 나였지만, 근 몇 주간 재택으로 일하는 시간보다 카페에 나와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집중력의 차이? 라기엔 집이나 카페나 작업 량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집에서 하든, 카페에서 하든, 어차피 업무는 pc로 하거니와, 애초에 내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컴퓨터에 들어 있다. 유튜브, 게임, 넷플릭스, 책, SNS, 등등... 쓰다가 보니 든 생각인데 집중을 못하는 이유는 다른 컨텐츠들이 아니라 그냥 내가 집중을 못하니까 그런 것 아닌가...? 그게 맞는 것 같다.
어찌 됐든, 카페에 나온다고 해서 그렇게 집중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주로 오는 카페가 풍경이 좋다 보니 관광객들이며, 주변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며 하루도 빠짐없이 왁자지껄해 되려 일에는 방해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까지는 아니어도, 3 일에 한 번은 카페에 오고 있다.
글을 다시 써 달라는 말을 10년을 넘게 들었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하물며, 글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그저 동아리에서 잠깐, 온라인에서 잠깐, 그리고 SNS에서 헛소리를 잔뜩 적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를 잠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쓸 이야기가 없다는 이유로 글을 손에서 놓았다. 정확히는 평소에 쓰던 머릿속 정리를 글로 남기던 습관을 잠시 놓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10년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몇 번이고 고쳐 쓸 수 있으니 내 경솔함을 감출 수 있다. 그뿐 이랴, 발이 달려 달아나는 것도 아니니,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에, 글을 담아 두었던 자리만 찾아갈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글이 좋다. 과거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되돌아볼 수 있으니 자기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남들이 적어 놓은 글을 읽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 좋다.
글이 좋은 이유는 외에도 너무 많지만 그 어떤 것보다 내가 글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글에는 발이 없다. 양지바른 자리에 터를 잡고,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잡생각 들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타이핑하여 박아 넣고 나면 이제 그 글은 움직일 수 없다. 그 자리에 붙들려 나를 쫓아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무수히도 많은 생각들을 바닥에 내팽개치듯 박아 비리고 도망쳤다.
나는 내 글이 싫다. 사랑을 노래하는 글에서는 애틋함과 따뜻함보다는 애절함과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먼지 같은 허무함이 느껴졌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미사여구들이 화려한 감정의 불꽃놀이를 그리는 듯 보이지만, 불꽃놀이는 불꽃놀이일 뿐이었다. 일 순간의 격한 감정을 폭발하듯 내비치고는 사라질 뿐이었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글에서는 나의 무료한 삶을 어떻게든 즐겁게 포장한 광대가 보일 뿐이었다. 내 인생의 주연을 맡고 있는 배우는 나조차도 그 속에 본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렇기에 나를 관찰하고 쓰는 내 일기는 남의 인생을 적어 놓은 것 마냥 이질감이 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싫다. 싫었고, 앞으로도 싫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10년간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럼 ‘지금은 왜 쓰고 있니?’라고 묻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며 갉아먹힌 감정이 이제는 정말 손 쓸 겨를도 없이 완전히 다 말라비틀어질 것 같아, 그럴 수는 없다고 몸이 요구한 것 같다. 지금의 이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모종의 계기로 꺼져가던 불씨가 한순간 터질 듯 벅차올랐고, 이제는 가까스로 진정되어 은은히 빛나고 있는 이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야 겨우, '적당한 온도로' 달궈진 감정의 동요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한 순간 휘몰아쳤던 감정의 폭발의 여파로 나를 연기하고 있던 내 인생의 주연 배우는 무대 위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록해야겠지. 너무 눈 부시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게 빛나고 있는 이 감정을 잊지 않도록,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써내려 가야 할 것이다.
장황하게 허무하던 비극이 아닌 소소하게 찬란한 희극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