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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비 맞으면서 하루 50km 넘게 걸어봤어요?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코스가 12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by 브라이연

오늘은 내 생에 하루에 가장 많이 걸었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그날 걸었던 올레코스는 제주시에 속한 코스가 아닌 올레 2~4코스로써 서귀포시에 속한 코스였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내가 걸었던 코스를 순서대로 일일이 다 소개하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참고로 제주올레길에 대한 각 코스의 정보는 포털에 검색만 해도 비슷한 내용들이 정말 넘쳐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올레길을 완주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 눈에 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과 함께 두서없이 편하게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그냥 저 화살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세요.혼자도 좋고 둘이서 함께 걸어도 좋고 친구와 걸어도 좋고 엄마, 아빠, 가족, 연인과 함께 걸어도 좋아요...


다시 그 기념비적인 날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한다.

그날은 제주올레길을 완주하기 위해 서귀포에서의 걷기 이후 두 달 후 다시 찾은 제주 서귀포에서의 둘째 날이었다.

제주 두 번째 방문 후 첫 걷기를 시작하는 날이라 컨디션도 좋았고 체력도 100% 충전된 상황이었기에 1차 때 걷지 않은 2~4코스를 촤대 한 많이 걷는 게 목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앞 서귀포 동문 교차로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달려 2코스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에 도착 후 이른 아침부터 바로 걷기 시작했다.


3개의 올레코스 어디 한 번 걸어볼까~


코스 주변은 평일 아침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핸드폰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들을 따라 흥얼거리며 주변 경치도 구경하며 걷는 기분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걷는 길에 성산일출봉도 보이고 3월에 걸었던 우도 가파도 추자도 생각도 나고 지난 3월의 생각들이 많이 났다.

기분도 좋고 발걸음도 가벼운 상쾌한 아침 올레길에서 만난 댕댕이. 뭘 그렇게 빼꼼 얼굴을 내밀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지...


그렇게 1시간을 걸었을까... 뒤에서 갑자기 젊어 보이는 어떤 여성분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 혹시 올레길 어디까지 걸을 예정이세요?"


그래서 나는 오늘 2~4번 코스까지 다 걷는 게 목표라고 말하자 방긋 웃으며, "방해가 안된다면 3번 코스까지 뒤에서 조용히 따라 걸어도 될까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순간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바로 그렇게 하시라고 말했다. 이유인 즉, 그분은 혼자 올레길을 걷고 있는데 몇몇 코스가 여자 혼자 걷기에 많이 무서웠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말에 백 번 천 번 공감이 갔다. 이 이유는 다음 글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아무튼 그렇게 둘이 함께 걷게 되었다. 항상 혼자 걷다가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걸으려니 좀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그 불편함도 잠시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덕분에 어느새 스탬프 지점들을 빠르게 통과했다.


그는 부산에서 살고 있으며, 여행사에서 일하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화사를 강제적으로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막막한 상황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혼자 올레길을 걷게 됐다는 그의 사연을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올레길을 걸으며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또 앞으로 스쳐 지나가게 될 수많은 사람들이 다 저마다 이런저런 이유와 사연으로 인해서 제주를 찾았을 것이며, 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토록 드넓은 제주에서 각자 올레길을 걷고 있겠구나..."

나 또한 글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제주를 찾은 명확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위에 정말 많은 사연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들이 품고 있는 가슴속 깊이 숨겨둔 그 아픔, 슬픔, 고민, 스트레스, 걱정들이 있다면 올레길을 걷고 난 후 다시 각자의 위치,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다 잘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함께 걷다 갑자기 발목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저히 함께 걷기가 힘들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그에게 먼저 가시라고 말한 후 나는 잠시 길가에 앉아 쉬기로 했다. 아마도 제주에 오기 전 집 근처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삐끗했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좀 쉬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어느새 2코스를 지났다.

올레길을 걸으며 특이한 풍경을 보곤 한다. 가게 또는 노상에서 과일을 파는 곳에 사람이 없고 돈이 들어 있는 허름한 바구니만 덜렁 놓여 있다.

갈증이 나서 음료수를 사 마시려고 가게에 들어갔는데 사진처럼 아무도 없고 돈은 그냥 알아서 계산해서 바구니에 넣고 가져가란다. 바구니엔 돈이 담겨 있다.

아주 당황스러운 이런 상황들이 종종 생긴다. 이분들은 정말 사람들을 믿는구나... 하지만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일상생활에서 절대 보기 힘든 그런 풍경임은 확실하다. 특이하지만 훈훈하고 따뜻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2코스를 지나 3코스를 빠르게 통과하며 열심히 걸았다. 중간에 비가 좀 내렸지만 몸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계속 속도를 내서 걸었다.


올레길에서 아주 흔하게.볼 수 있는 그런 길이지만 볼때마다 참 이쁜 풍경
발 통증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틱을 이용해야만 했다

3코스 중간 스탬프를 찍는 지점에서 어르신 한 분이 서 계셨다. 내가 도장을 찍고 있는데 나에게 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하신다. 래서 당연히 찍어드렸더니 나도 한 장 찍어주시겠다는 어르신!

그렇게 갑자기 친해져서 또 갑작스럽게 또 다른 파트너인 어르신과 함께 걷게 됐다. 어르신은 김포에서 혼자 올레길을 걷기 위해 오셨다고 한다. 어르신의 연세는 어림잡아 적어도 75세 정도는 돼 보이셨다.

뒷모습만 봐서는 절대 70대 중후반의 어르신이라 생각할 수 없는 날렵한 뒷태였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정말 정말 정말 많다


그런데 놀라운 건 어르신의 걷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정말 빨랐다. 엄청 빨랐다. 나도 나름 체력에 자신 있고 걷기에 자신 있는 놈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의 속도를 맞춰가기가 버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랍고 자괴감마저 들던지...

대화를 나누면서야 알았다. 어르신은 평생을 마라톤과 하이킹, 트레킹으로 단련된 고수 중의 고수였다.

내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게 어르신의 목표지점운 3코스까지였다. 아~ 정말 힘들었다. 정말 대단하신 어르신과 기쁨? 의 이별을 하고 나서 4코스부터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인 게 그렇게 기쁠 줄이야...

뭐 이런 경험들이 다 혼자 여행할 때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재미 아닐까~


다시 혼자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4시가 되었고 배가 고팠다. 8시간 동안 초코바 두 개 먹으며 버텼는데 더는 못 참겠어서 걷다가 괜찮은 식당이 있으면 바로 들어가서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비가 온다. 대충 가랑비처럼 내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비가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편의점에서 우비를 하나 사서 입고 계속 걸었다.

비오는 제주를 언제 또 이렇게 오래도록 하염없이 걸어볼까... 이 또한 좋지아니한가~

비가 온다고 걷기를 중간에 끊을 순 없으니 말이다. 해안길을 걸을 때면 거센 바람까지 더해져 우비가 사정없이 펄럭거려 우비 속 옷까지 흠뻑 젖어버렸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을 비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그 열악한 상황에도 어느새 적응이 됐다.


언제부턴가... 거친 비바람을 맞으며 흠뻑 젖은 채로 걷는 와중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이 순간 살짝 멋쩍어 보였다 ㅎ


주변에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정말 아무도 없는 비 내리는 어느 한적한 길을 혼자 몇 시간을 걷다 보면 그냥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그냥 멍하게 앞만 보고 걷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오후 6시쯤 됐을무렵... 내 정신과 육체는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걷고 밥을 먹자!! 조금만 더 걷자고 혼잣말을 하며 걷다 보니 벌써 하루가 거의 다 가고 나는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도 먹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식당 하나가 눈앞에 보였고 그냥 메뉴를 볼 것도 없이 들어갔다.


물에 빠진 생쥐의 몰골로 들어온 나를 사장님께서 어찌나 그렇게 측은하게 바라보시던지...

메뉴들 중 문어 해물라면이 눈에 들어와 그놈을 시키고 당연히 공깃밥도 추가 주문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그냥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오늘 내가 얼마나 걷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음식이 나왔다.

얼큰칼칼한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먹으니 완벽 그 자체

일단 비주얼만으로 99.9점이었다. 오전 7시에 호텔에서 나와서 10시간이 넘도록 걷다가 첫끼를 먹는 것이니 뭔들 안 맛있을 수가 없겠냐마는 이건 정말.. "너무 맛있잖아!!!"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꼭 가서 다시 또 먹고 싶다

꼬들꼬들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에 쫄깃한 문어와 그 외 라면 국물 속 엑스트라들까지 나를 아주 혼미하게 만들었던 라면 한 그릇! 마지막은 밥을 말아서 밥 한 톨과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일어서는데 사장님께서 따듯한 커피 한 잔 주셔서 냉큼 받아 호로록 마시고 남은 걷기를 마저 걷기 위해 나는 다시 빗속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냥 한 번 뒤돌아봤는데 저 멀리서 사장님께서 손을 흔드시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하시는데 순간 아주 살짝 울컥했다.


사실 그때 밥을 먹고 나온 후... 어찌나 다시 빗속으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던지... 정말 죽을 만큼 싫었다. 그냥 콜택시 불러서 호텔까지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서로 손을 흔들며 인가를 나누고 나는 사장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비 맞으며 한참을 걸어서야 마지막 종착지인 4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자 5코스의 시작점으로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서 제주도에 처음 와서 제주올레길을 처음 걷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했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오늘 12시간 동안 총 54km를 걸었다.


내가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하루 50km 넘게 걸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꾀나 힘들었다. 5시간가량을 비바람을 맞으면서 걸었던 게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내 몰골을 거울로 보니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의 그런 상태였다.

그날 밤 호텔에서 확인했는데 내 발가락 몇 놈이 사망한 상태였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다시 그 녀석들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냥 스르륵 나는 침대 위에서 기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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