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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03. 2023

S#3-1. 영화사에 입사한 조대리

핀 조명에 비친 양각 로고에 매혹되다

난생처음 다니게 된 회사에서 사원 '조 OO 씨'로 불리며, 이런저런 사회의 쓴맛을 온몸으로 느낀 지 반년쯤 되었을 무렵, 입대 동기 X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와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로 한번 놀러 오라고 말했다. 이미 동기들 사이에서 한바탕 회자되었던 '영화사'가 X가 말한 회사였다.


얼마쯤 후, 역삼동에서 퇴근 후 여의도로 향했다. X의 회사가 있었던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딱히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문득 '경력 1년 이상'의 조건이 내걸려 입사지원서조차 내지 않았던 취업준비 때가 떠오르긴 했지만, 영화사도 그냥 회사겠거니 싶었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갑자기 이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아담한 크기의 로비의 벽에 핀조명을 받고 있던 X의 회사 로고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순간 내 눈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거기에 매혹당해 버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마도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을 시각, 아직도 퇴근하지 않고 각자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던 '영화사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사무실 벽 곳곳에 붙어있던, 당시 X의 회사에서 수입했던 외화들의 포스터 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열띠게 '영화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


사실 사무실에 한번 놀러 오라는 말에도 크게 무게를 싣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기도 했지만, 어차피 영화 관련 경력이 전무한 것은 구직 활동을 하던 때나, 그때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발을 디딜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고 단념한 터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영화사' 사무실 구경이나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이미 내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고, 그날 저녁을 먹으며 X는 내게 자신의 회사로 옮기라는 ('스카우트'라는 거대한(?) 표현은 차마 민망해서 쓸 수 없지만) 제안을 받았다.


이미 마음이 심하게 기울어버렸기 때문에, 입사한 지 7개월 밖에 되지 않은 나의 첫 직장에 이직을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영화사 직원이 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날 저녁에 봤던 그 직원들과 함께 나도 영화사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영화사 직원이 되었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낙하산 조대리.


곧 생애 첫 영화사에서의 주간 회의에 참석해 다시 한번 영화사 직원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에 귀를 쫑긋 세웠다.


“ㅇㅇㅇ씨, 지난번 말한 그 사안 팔로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아무래도 전체적인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팔로업’? ‘브레인스토밍’? 이런 게 이른바 업계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인가? 첫 회사는 각자 맡은 프로그램에 맞춰 움직이는 회사에서 일했던 터라, 전체 직원들이 한데 모여서 각자의 업무를 공유하는 주간 회의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하나같이 똘망하고 총명해 보이는 '영화사 직원들' 한 명 한 명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고 신기했다.


어서 나도도 뭔가 ‘팔로업’할 업무를 맡고, 다른 사람들과 ‘브레인스토밍’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희망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입사하고 1년 여가 지났을 무렵, 회사에서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유럽영화제'의 프로그래밍과 홍보 대행을 맡은 적이 있다. 마지막 상영이 끝날 즈음, 당시 한 팀이었던 실장, 동료들과 함께 부산스럽게 정리를 하던 중이었는데,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영화제가 열린 사나흘 내내 상영작들을 챙겨보느라 살짝 눈에 익었을 수도 있지만, 그 청년은 우리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 있는지 흘끔흘끔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동갑이었던 동료 C가 그 청년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청년은 혹시 행사를 마쳤으니 뭔가 뒤풀이 같은 걸 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영화사 사람들은 뒤풀이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는 그 청년의 말을 들으니, 막연하게 영화사라는 곳을 동경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이미 영화사 소속이 된 지 1년 여가 지난 나는 더 이상 그 청년과 같은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기보다는, 적어도 '영화 관련 경력 1년'을 경험한 경력사원이 되어있었다.



영화사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며, '꿈의 공장'이 만들어내는 색다른 재미를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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