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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05. 2023

S#3-3.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다

illustrated by 조대리

내가 다녔던 두 번째 직장이자 첫 번째 영화사였던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수입, 배급한 영화 중에 <디 아더스 The Others(2001)>가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개봉하고, 200만 명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한 '큰 영화'였다. 꽤 큰 규모의 비용이 집행되는 중에는 감독 내한 행사를 비롯, 인쇄와 방송 매체 광고 등도 있었고,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시사 이벤트도 있었다.


하지만 <디 아더스> 전후로는 그 정도 규모로 배급한 영화는 없었다. 그나마 외화 마케팅이라는 생소한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던 <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2000)>가 그에 준하는 정도의 규모로 개봉하긴 했었지만, 그 외에는 이른바 '예술 영화'로 분류되면서 큰 규모로 개봉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영화들이었다.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작가의 피땀눈물이 뒤엉켜 완성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수십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 제작자 등 집단지성이 합쳐지고, 그 노력에는 아무도 비난의 쓴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분분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혹평을 쏟아낼 수도 있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저마다 각자의 감상을 주위에 퍼뜨릴 수도 있다.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지만, 대규모로 개봉하기에 부족한 영화는 분명히 있다.


그나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이력이 있었기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 Breaking the Waves(1996)><킹덤 The Kingdom(1994/1997)> 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보다는 씨네필들에게 새로운 스타로 각광받았던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와 역시 대중적이지 않은 아티스트 비요크 Björk 주연의 뮤지컬 영화가 전국 관객수 20만 명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할 정도로 선방할 수 있었고, 결국 이제까지 라스 폰 트리에 연출작 중 국내 최고 흥행 성적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버드맨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2014)>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오리지널 각본상을 받았고,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2015)>로 아카데미 감독상 2년 연속 수상자가 된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Alejandro G. Iñárritu의 장편 연출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 Amores Perros(2000)>는 놀랍게도 전국에서 단 한 곳, 종로 2가에 있었던 코아아트홀에서만 개봉했다.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73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그해 수상작인 <와호장룡(臥虎藏龍)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2000)>이나 함께 후보에 올랐던 <타인의 취향 Le goût des autres(2000)>은 알아도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국내에서 거의 개봉한 적이 없는 멕시코 영화이고, 이냐리투의 인지도는 당시 거의 제로에 수렴했으니, 이 영화를 걸겠다고 나선 극장이 거의 없었던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프랑스 영화 <쁘띠 마르땅 Le Monde de Marty(2000)>의 경우는 <아모레스 페로스(2000)>보다 더 심각했다. 주연 미셸 세로 Michel Serrault(1928~2007)는 당시 연기 경력이 50년 가까운, 프랑스 대표 배우 중 하나였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전무하다시피 했고, 타이틀롤 마티를 연기한 조나단 드뮈르게 Jonathan Demurger는 당시 12세 어린이 배우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으니, 프랑스에서나 한국에서나 초면이었고, 각본과 연출을 맡은 드니 바르도 Denis Bardiau도 이 영화가 첫 장편 연출작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어린이와 노년의 할아버지가 티격태격하다 함께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는 내용인데,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무난했다. 소름 끼치게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주저하게 되지만, 훈훈하고 흐뭇하고 무난하게 전개되고, 두 배우의 연기합도 나쁘지 않다. 다만,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까지 관객을 끌어당기기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영화의 원제인 "Le Monde de Marty"는 직역하면 '마티의 세계/세상' 정도가 될 텐데, 개봉 제목으로 쓰기에는 아무 특징도 개성도 없었고, '마티 Marty'는 굳이 프랑스 원어대로 표기하면 '막띠' 정도가 될 테니 아무튼 이래저래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제목으로는 낙제점이었다.


당시 나의 팀장이었던 A와 동료 C와 함께 거의 하루종일 회의를 하며 이 영화의 제목을 궁리해 냈다. 최소한의 예산만으로 개봉해야 했기에 홍보 마케팅 대행사도 쓸 수 없어, 모든 건 회사 내에서 해결해야 했으니, 제목 짓기도 모두 우리의 몫이었음은 당연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던 중, 프랑스어로 원활한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4년 간 들은 풍월이 있었던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역발상이 떠올랐다. 주인공 어린이 이름인 '마티 Marty'의 정식 표기는 '마틴 Martin'이고 이를 원어로 표기하자면 '마르땅' 정도가 될 것이고, 어린이니까 작고 귀엽다는 의미로,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불어 단어 중 하나인 '쁘띠'를 붙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대표의 최종 컨펌을 거쳐, <쁘띠 마르땅>이라는 다소 요상한 제목을 갖게 된 이 영화도 전국에서 단 한 곳, 코아아트홀에서만 개봉했다. 신인 시절 설경구 배우 주연작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The Bird Stops in the Air(1999)> 또한 단관 개봉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광화문에 있는 아트큐브(현재 시네큐브 2관)에서만 관객을 만났다.


<더 레슬러 The Wrestler(2008)><블랙 스완 Black Swan(2010)><더 웨일 The Whale(2022)> 등으로 이제는 할리우드에 완전히 안착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Darren Aronofsky의 두 번째 연출작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2000)>이나  야구치 시노부(矢口 史靖) Shinobu Yaguchi 감독,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聡) Satoshi Tsumabuki 주연의 청춘 영화 <워터보이즈(ウォーターボーイズ) Waterboys(2001)> 등은 단관 개봉까지는 아니지만 크지 않은 규모로 어렵게 개봉한 영화들이다.



<워터보이즈(2001)>의 경우는 내가 '영화사 조대리'가 된 지 2년 1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한국을 찾아 한강 수영장에서 야외 시사를 가지는 등 나름대로 감독 내한 이벤트를 했고, 극장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배급 시사에서의 반응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다.


당시 배급을 맡기로 한 모 회사에서 원래 개봉예정일이었던 2002년 7월 15일에서 8월 1일로, 다시 8월 15일로(굳이 광복절에 일본 영화를!) 무작정 일정을 변경했고, 7월 15일 개봉에 맞춰 집행한 광고는 이미 기간이 끝나 더 이상 광고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극장들로부터도 조금씩 외면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원래 예정에 맞춰 제작해 둔 35mm 프린트 대다수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정도로, 최종 개봉관 숫자는 처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래, 시장 상황에 따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었겠지. 문제는 모 회사의 담당자와 내가 다니던 회사 대표가 만나는 자리에 함께 갔던 날이었다. 그이는 자신보다 연배가 어리지만, 그래도 남의 회사에서 버젓이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반말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대충 얼버무리듯 '미팅'이 끝나고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난 자리의 바닥을 보니, 초면이었던 내가 건넨 내 명함이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 이런 썩을!



불과 2년 반 전, 최소한의 지원 자격인 '영화 관련 경력 1년 이상'의 두 배만큼이 쌓인 상황이 물론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내 명함을 보면서, 영화사 조대리로 즐겁고 신나는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한 업계에서의 내 위상도 저 정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아직 서른이 되기 전, 관련 경력 2년 1개월을 채운 영화사 조대리는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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