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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08. 2023

영화 일이 하고 싶으세요?

(고작) 경력 2년으로 이직하려다 애먹은 조대리

2년 남짓 다녔던 나의 두 번째 직장이자 첫 영화사였던 그곳을 관두고 새 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엔 아직 서른이 되기 전이었다. 관련 경력 2년이라면 다른 영화사로 옮기는 데 크게 애먹지 않을 것 같았던 자신감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한두 달 정도 '재충전'하면 어느 회사엔가 있을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생각은 거대한 착각이었다.


한두 달이 서너 달이 되고, 중간중간에 짧고 굵게 하고 빠지는 영화제 아르바이트 두 번의 기회가 있었을 뿐, 좀처럼 구직의 기회를 찾아오지 않았다.


반년 조금 넘게 다녔던 내 첫 직장에서의 경력을 다시 되살리기엔 업계가 너무 좁은 데다 내 경험이 미천하여 어디 명함 내밀기도 애매했고, '2년 1개월'의 영화 관련 경력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였다. 막 30대에 접어들었던 나는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물론 한참 젊었지만, 나보다 몇 살 어린 사람들이 팀장급으로 자리 잡은 회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2년 1개월'은 어느 영화사든 팀장급으로 자리잡기엔 많이 부족했다.


몇 군데 면접을 보게 되었지만,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거의 비슷했다. 나보다 한두 살, 서너 살 어린 사람이 이미 팀장으로 있는 팀에 팀원으로 뽑기에는 나이가 넘치고, 그렇다고 팀장으로 뽑기엔 경력이 부족했다.



그렇게 경력의 공백이 조금씩 길어져, 근거 없던 자신감이 초조함으로 변해버린 즈음, 당시 '큰 영화'들을  배급한, 규모가 나름 상당한 어느 회사의 '팀장' 자리에 지원하게 됐다. 1차로 만난 이사 분이 내가 꽤 마음에 들었다는 전언과 함께, 어쩌면 저 회사에서 내 영화 경력 두 번째 장(章)이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싹텄다.


얼마 후, 대표이사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평소 입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양복까지 차려입고 다시 그 회사를 찾아갔다. 대표이사실이었는지 회의실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표이사가 기다리고 있던 방에 들어간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1차 면접은 이사 한 명과 봤었고, 2차 면접도 당연히 대표이사 한 명과만 만날 거라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었다. 대표이사 양옆으로는 서너 명 정도 그 회사의 다른 부서 팀장들이 앉아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하나같이 다 화가 나 보였고, 30분이었는지 1시간이었는지 면접 시간 내내 나를 째려보는 그 눈빛에 압살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불쾌감이라고 해야 할지, 주눅이 들었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매우 오묘한 감정이 들었고, 면접 내내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무섭게 째려보던 사람 중 하나가 적의감 가득한 말투로 내게 '영화 마케팅의 A부터 Z까지를 말하라'며, 대표이사로부터 얻은 질문의 기회를 빌어 '짜친' 질문으로 나를 공격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 중 <앨리의 사랑 만들기 Ally McBeal>에 자주 등장하는 상상 속 장면처럼, 내 주먹이 풍선만큼 부풀어 올라 그 사람의 얼굴에 크게 한방 먹이고 싶던 순간이었다.


그 질문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다. 다만 내 마음속에는, 저렇게 나를 적대적으로 째려보는 저런 사람들과 한 회사에서 동료로 지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


역시 결과는 실패였다.


하긴 합격했으니 출근하라고 했더라도 다시 내적 갈등에 휩싸였을 것이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한창 잘 나가던 그 회사의 존재가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고 보니, 그날 내게 그렇게까지 적대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그 사람들도 그날 이후 어디서도 다시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사실 그날의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 사람들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으니, 어디선가 마주쳤더라도 아는 체 할 수도 없다.


면접이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지만, 그런 적대적인 분위기에서의 면접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난감한 상황을 좀 더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그런 재능은 아직도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앤 해서웨이 Anne Hathaway 주연 영화 두 편을 보면, 회사에서의 면접과 이후 이어지는 회사 생활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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