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만연한 가스라이팅에 대처하는 법
1) 지각을 밥 먹듯 하는 Z 대리가 이직을 선언하자, 직속 상사가 Z 대리에게 말합니다.
"다른 직장 가서 그런 식으로 계속 지각하면 큰일 난다!"
2)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마친 X 대리에게 직속 상사가 말합니다.
"X 대리가 열심히 하는 건 잘 알지, 그런데 잘해야지, 응?"
1)의 경우에는 Z 대리가 거의 매일 지각했기 때문에, 직속 상사 입장에서 저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다만, 매일 지각하는 Z 대리가 이직 선언을 하기 전에, 넌지시 혹은 직설적으로 지각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Z 대리가 납득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경우엔 Z 대리가 평소에 저지른 행각이 있으므로 '가스라이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2)의 상황은 완전히 가스라이팅에 속한다. 대체 저런 표현은 누구 머리에서 최초 등장한 걸까. 열심히 하는 건 알지만, 잘해야 한다니. 저 말을 내뱉는 직속 상사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상대방으로 하여금 잘못했다는 인식을 심어 결국 패배의식에 절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의 유래가 된 영화 <가스등 Gaslight(1944)>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누군가 작정을 하면 다른 누군가를 바보 만들기란 아주 쉽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 자체가 실은 타인의 심리를 파괴함은 물론 인생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범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뜨거운 뉴스를 읽다가, 이른바 진상 학부모가 가장 많이 말하는 대사 1위가 "저희 남편이 진짜 화 많이 났어요"라는 내용을 보니, 과거 언젠가 어떤 이유에서건 나를 몹시 못마땅해했던 당시 나의 직속 상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안 그런 것 같아도 인사팀에서 하나하나 다 지켜보고 있어요."
군대에서나 회사에서나 일단 직급이 우선이다 보니, 아무리 부당한 언사를 듣고 부당하다 느끼더라도 조목조목 따져 묻는 행위는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 같아서는 대체 그 지켜본다는 인사팀의 담당자와 삼자대면이라도 하자고 제안하고 싶었으나, 직속 상사에게 그렇게 따져 물어봐야 본전도 못 찾겠다 싶었던 나는 '아 그래요?' 라며 흠칫 놀란 척 연기까지 해야 했다.
사실 직장 내의 가스라이팅에 대처하는 방법이 뭐가 있겠나. 영화 <가스등(1944)>에서는 그나마 그레고리 안톤의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자칫 가스라이팅의 희생자로 인생 종 칠 뻔했던 폴라가 시원하게 한방 먹이며 속 시원한 엔딩이라도 보여줬지만, 현실에서 속 시원한 엔딩을 맞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몇 번의 가스라이팅 경험을 돌이켜보면, 모두 공통적인 상황이 있었다.
더 이상 그 조직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순간이 왔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깨달았어도 모른 체하며, 저런 식의 가스라이팅에 함몰되어, 일단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을 문제점을 찾느라 골몰한 적이 있었다.
휴직이니 이직이니 퇴사니, 그저 가스라이팅이 드글대는 소굴에서 일단 벗어나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었을 수도 있었고, 결국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조직을 벗어나 더 이상 저런 종류의 가스라이팅에는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게 결국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들이 바라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 가스라이터들조차도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겠지.
결국 조직에서의 가스라이팅이란, 마뜩지 않은 조직원을 처단하기 위한 일종의 큰 그림 하에 정색하고 자행하는 일종의 갑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직 내에서 가스라이터로 지정되었든, 자진했든 간에 그들도 결국 조직으로부터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소모품이란 것을 언젠가는 깨닫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