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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09. 2023

혈액형과 직장 내 인간관계

요즘은 이른바 인간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MBTI의 시대이다. TV에 나오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연예인부터 정치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MBTI를 섭렵한 후, 자기 자신의 그것과 비교하여 공통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 공감대를 형성한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어설픈 얼리어댑터(?!)이기 때문에, 나도 발 빠르게 MBTI 측정 후 나는 어떤 유형의 성격을 가졌는지 빠르게 확인했다.


처음 두어 번 테스트 결과는 똑같이 '사교적인 외교관, ESFJ-A'이 나오길래 역시 나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며, MBTI가 역시 사람 잘 알아본다며 주변에서 묻기도 전에 나는 'ESFJ-A'라고 널리 알렸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건축가, INTJ-A'로 결과가 바뀌었다. 내 아무리 변덕이 죽 끓듯 하고, 귀가 종이비누처럼 얇지만, 사람 성격이 이렇게 확 바뀔 수도 있나 싶었다. 역시 MBTI는 믿을 게 못된다며 사교적인 외교관이든 건축가든 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이라며 치부해 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외향적(E)이었다가 내향적(I)으로 바뀐 것은 그렇다 쳐도, 감각적(S)이었다가 직관적(N)으로, 감정적(F)이었다가 사고적(T)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인식(P)보다는 판단(J)이라는 점만 그대로인가!



하지만 나는 옛날 사람, X세대여서 그런지 MBTI 이전에 혈액형 신봉자였다. 그냥 신봉자 수준을 넘어,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오직 'A-B-O-AB' 네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잣대를 들이댔다.


20여 년 전, 서점을 강타한 정도까지는 아니고,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을 산 적이 있다. 혈액형 4종류와 별자리 12개를 결합해, 인간 유형을 48개로 나누어 48권짜리 시리즈로 출간한 중에, 나에게 해당하는 한 권을 샀다.


책 내용은 48개 챕터로 나뉘어, 나와 48개 유형에 따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했다. 혈액형과 별자리가 결합한 유형별 궁합이라고나 할까.


갓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그 책을 아예 들고 다니며, 일단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혈액형과 별자리를 결합한 48가지 유형 중 하나를 찾아낸 뒤, 나와의 궁합이 어떤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예 북마크 스티커까지 챙겨 들고는 상대의 이름을 적어 북마크까지 하는 열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나의 관계를 48개 유형에 따라 나누며 유난을 떨다 보니, 누군가 나와 사이가 안 좋다거나, 어딘지 맘에 안 들게 행동할라 치면, 어김없이 그 책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다 책에 부정적인 내용이 쓰여있으면, 역시 이러니까 나랑 안 맞는다며 책에 대한 맹신이 더욱 짙어졌고, 정반대의 경우에는 책 내용을 폄하하며 역시 다 맞는 게 아니라며, 그때그때 나 편한 대로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했다.



혈액형에 따른 인간 유형을 나눈 수백 가지 썰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을 커다란 문과 열쇠구멍에 비유한 이야기였다.


A형: 문에 열쇠구멍이 너무 많아서 그중 열쇠가 들어맞는 구멍을 찾기가 몹시 어렵다. 그러다 어렵게 문을 열게 되면, 또 다른 문이 나타난다.

A형의 마음을 알게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데다, 일단 알게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장벽에 부딪힌다?


B형: 문에 열쇠구멍이 단 하나이다. 손쉽게 문을 열면, 황야가 펼쳐진다.

→ B형의 마음을 아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B형의 마음속은 자기 자신도 모른다?


O형: 문에 열쇠구멍이 단 하나이고, 그 문을 열면 방이 하나 있을 뿐이다.

→ O형은 속내를 알아차리기도 어렵지 않지만, 속 안에 뭔가를 딱히 담아두지도 않는다?


AB형: 문에 열쇠구멍이 많다. 어렵게 문을 열면 그때부터 미로가 시작된다.

→ 미로의 끝이 있지 않은 이상, AB형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도란 없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는 거의 또래집단과의 교류가 인생의 전부이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위아래 선후배 관계로 엮이는 연령대가 조금씩 넓어지다가, 군대에서 다시 또래집단을 겪은 후, 직장생활 초년기에는 위로 10년 이상의 선배들이 내 인생에 등장하더니, 연차가 쌓이고 내 나이가 많아질수록 아래로 아래로 나이차가 점점 벌어지는 후배들이 등장하게 된다.


동년배라고 다 마음이 통하는 것이 아니듯이, 혈액형이 같다고, 혈액형과 별자리를 결합한 48가지 유형에 따른 궁합이 맞다고 해서 모두 마음이 통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동료, 선후배와 혈액형이나 MBTI의 상관관계라는 것은 부러지게 규정지을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혈액형에 따른 인간 유형 분류가 그랬듯이, 요즘 유행하는 MBTI도 언젠가는 다른 유형의 무언가로 바뀌게 될 것이고, MBTI를 찾는 게 옛날 사람 티 내는 일이 되겠지.



대놓고 B형이라고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2002)>에서 휴 그랜트 Hugh Grant가 연기한 캐릭터 윌 프리먼 Will Freeman은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도 않고 자신이 피해입기도 싫어하면서도 속내에 뭔가 따스함을 감추고 있는 전형적인 츤데레이자 B형 남자이다. 내 혈액형이 꼭 B형이어서 이입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 본다.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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