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이 하고 싶으세요? 4
영화 일이 하고 싶으세요? 4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 중에 이런 질문이 있더라.
VS
어찌 생각하면 조직 생활에 있어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유형 두 가지일 텐데,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그렇다고 스스로 규정짓는다.
태어나 처음 해본 일일지라도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든 다음 착오나 실수를 최소화해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그게 이른바 '일 잘하는 사람'일 것이고, 주변 사람들과 큰 갈등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기까지 하면 밸런스 게임의 두 가지 유형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최고의 인재일 것이다.
'영화 경력 2년 1개월'로 몇 번의 이직 도전에 실패하는 동안,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에서 짧고 굵게 네 번 일할 기회를 얻었었다.
그중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홍콩의 허안화 감독(許鞍華) Ann Hui과 대만계 캐나다 배우 임가흔(林嘉欣) Karena Lam의 국내 매체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잡고 통역(!?)을 맡은 적이 있었고, 해마다 부산 영화제를 방문하는 유럽 게스트들과 관련한 유러피언 필름 프로모션(European Film Promotion(EFP))의 한국 쪽 담당 일을 했었다.
모두 내가 태어나 처음 해본 일이었지만 잘 해내고 싶었다. 네이티브 스피커도 아니고 전문통역사도 아니었지만, 인터뷰 순차통역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삼일 동안의 여러 인터뷰를 무리 없이 진행한 것이 허안화 감독과 임가흔 배우와 일할 때였고, EFP 관련 일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목표했던 대로 널리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다소 성에 차지 않는 결과로 이어져서 몹시 아쉬웠다.
그래도 2년 1개월의 영화 관련 경력에 두 줄은 더 추가할 수 있었으니, 거기서 그나마 보람을 찾았달까.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에는 적어도 8개월은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해 8회째를 맞이한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초청팀장 자리였다. 역시 태어나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었고, 맡아본 적도 없는 '팀장'이라는 직책에 쥐꼬리만큼이라도 책임이 부가된다는 점이 몹시 부담스러웠으나, 해외에서 온 게스트와 영어로 소통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 자격요건이 충분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다음 해 처음 개최되었던, 그리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1회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는 프로그램 팀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 역시 태어나 처음 해본 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포지션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고작 두 번 뿐이기는 했지만 영화제에서의 경험 또한, 사회초년생 때 얻은 '2년 1개월' 경력 못지않게 내게는 중요하고도 소중한 것이었다.
스태프와 자원활동가(혹은 자원봉사자)들이 적어도 50명 이상, 많게는 200여 명이 넘게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반년 정도 와라락 모여 각자 재능과 눈치를 발휘해 개폐막식을 비롯한 크고 작은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가동해, 7~10일간의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공통 목표이다.
누군가에게는 처음이고, 누군가는 두 번째, 혹은 그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 더 경험이 많다고 텃세를 부리는 일만큼 못난 짓이 없더라. 그렇다고 '처음이라 제가 잘 몰라서'라고 발뺌하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도 용납될 수 없다. 또 그렇다고 쥐뿔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하는 것도 꼴불견이고, 자신이 속했던 이전 조직과 현재 속한 조직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일도 우습다.
이전에 다녔던 영화사에서는 딱히 비교분석 대상이 없었으나, 영화제 조직에서는 워낙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져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 하는 사람'에 대한 각자 자체적인 기준과 잣대가 난무했다. 서툴러서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곧바로 바로 잡고 다시 나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할 텐데, 또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 하는 사람'을 나누는 일에만 급급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원래 예정했던 계약 기간이 끝나고, 다음 해에도 같은 포지션으로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확답은 잠시 미뤄둔 채, 서너 달인지 네댓 달 추가 계약으로 출근을 계속하던 때였다. 추석 명절 즈음, 남아 있는 1년 계약직과 나와 같은 추가 계약직들 몇 명에게 사무국에서 스팸 세트를 지급했다. 그런데, 내 것이 없었다. 사전의 어떤 언질 같은 것도 없이, 하필 딱 나만 그놈의 스팸 세트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추가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뭔가 내부적으로 소요가 있었고 그것이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인 내게 똑 부러지는 설명이나 해결 방안 없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하게 되었던 것이었고, 그에 대한 누군가의 보복이 바로 스팸 세트 지급을 제외하는 것이었나 보다.
명절을 앞두고 분주하게 스팸 세트가 지급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자존심이 상한 건지 그냥 기분이 확 나쁜 건지, 저까짓 스팸 세트가 얼마라고 열받아 있는 중에, 나와 같은 조건으로 추가 계약한 어떤 친구가 자기가 받은 스팸 세트의 절반을 내게 가져다주며 나눠가지자고 말하자, 울분이 폭발해 버릴 뻔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사람 일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이, 그로부터 얼마 후 스팸과 관련된 회사의 계열사인 영화사로 이직하게 되었고, 명절마다 임직원 할인으로 정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스팸 세트를 양껏 구매하게 되었을 때, 그해 가을 스팸 세트로 빚어진 울분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한 가지 교훈이라면 교훈을 얻었다. 당시 이러저러한 상황을 알게 된 후 내가 했던 행동은, 그렇게 상황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고, 필요하다면 맞서 싸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냥 피해버렸다. 당시 속해있던 조직 자체를 우습게 봤던 것도 사실이고, 이까짓 거 안 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오만함 때문이었는지, 그냥 피해버렸다.
그때의 결정과 행동은, 시간이 한참 지난 일이지만, 몹시 후회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인간의 삶은 어차피 끊임없는 후회의 연속 아니던가.
영화제에 관한 영화를 생각하다가, 오히려 스팸으로 인해 흘러간 글의 마무리로 뼈저린 후회에 관한 영화를 찾아봤다. 순간의 선택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후회와 회한은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고, 이 두 영화는 그에 대한 각기 다른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