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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12. 2023

돌발 상황 속 내면의 고요

영화 일이 하고 싶으세요? 5

최근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시끌벅적한 잼버리 파동(?) 관련 뉴스를 보다 보니, 국제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던 두 번의 경험 중 벌어졌던 두 번의 돌발상황이 생각난다.



첫 번째 돌발상황은, 초청팀장으로 일했던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파티장에서였다. 개막식을 마치고 이동한 약 500여 명의 국내외 게스트들이 개막파티 장소에 모였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다 당시 가장 윗자리에 있었던 어느 분이 인사말을 할 차례가 되자, 사전 점검에서 단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던 마이크가 꺼졌다.


이것은 천재지변인지 자연재해인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더 끔찍한 것은 마이크가 당장 복구되지 않았다. 행사 진행을 맡은 회사에서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아내지 못했고, 인사말을 하려던 그분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분노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내게 돌아온 것은 누군가의 호통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내 마음속에 고요가 찾아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통의 방법이란 500여 명의 게스트가 가득한 그 북적거리는 장소 한가운데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내게 호통치던 당사자는 500여 명의 게스트에게 익숙한 존재였지만, 나는 '노바디'였기 때문이었을까. 어차피 그들이 보기에 마이크가 꺼진 건 이미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직후 벌어진 호통잔치가 더 큰 볼거리였을 수도 있다.


차라리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웃으며 원래 하려던 말을 건넸다면, 적어도 호통잔치보다는 훨씬 세련되어 보였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마이크가 애초에 꺼지지 않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다음 해, 프로그램팀장으로 합류하게 된 고양 국제어린이영화제 개막식 날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그때, 나는 전년도 부천 때와 다른 포지션을 맡게 되어 개막식 당일날 개막식장을 찾은 게스트들을 맞이하는 집행위원장 옆에서 우산을 받쳐드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반년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화제 경험과 능력을 모아 준비했고, 그 안에서 이런저런 갈등도 있었지만 일단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당시 개막식장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던 친구 J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금 아파트 단지 내 안내방송이 나오더라며, 개막식에 주민들이 참석해 달라는 일종의 독려였다는 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던 찰나, 저쪽 멀리에서 마치 군단을 이룬 듯한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개막식이 열릴 예정인 장소로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었다.


좌석 수에 맞춰서 초대 인원을 미리 가늠했던 것은 당연하고, 당일날 벌어질 수 있는 돌발상황에 만반의 대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그것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장 초청팀장을 맡고 있던 K의 곡성이 솟구쳤다. 그럴만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결국 비상 상황에 대비해 확보했던 예비 좌석으로 몰려든 인원을 안내해 긴급한 사태는 해결이 되었지만,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데에는 누군가의 판단착오가 있었음은 분명했다.



그전 해에 부천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영화제 일을 처음 해 보는 사람'이었으나, 그다음 해에 나는 '영화제 일을 적어도 한 번 해 본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영화제를 해 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크게 각광받지 못했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1회 영화제에 참여하게 되었기에, 적어도 5회까지는 일하고 싶었던 고양 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의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돌발 상황의 대명사라면 천재지변, 자연재해가 먼저 떠오르지만, 인재(災) 만큼 커다란 재앙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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