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하게 등장하는 영화 속 팝송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대리의 영화음악실' 세 번째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귀에 친숙한 노래가 나왔을 때 반가움을 느꼈던 경험, 누구나 있으셨을 텐데요.
'저 노래가 저 장면에?' 이렇게 놀랐던 적도, 마치 그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곡인 양 찰떡처럼 들어맞는 선곡 센스에 놀랐던 적도 있는데요.
오늘 조대리의 영화음악실의 세 번째 플레이리스트를 들으시면서, 이미 봤던 영화라면 그 영화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곱씹어 보시고, 아직 못 본 영화라면 주말에 한 번 도전해 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첫 곡은 벤 팔머 Ben Palmer 감독 연출, 레이크 벨 Lake Bell, 사이먼 페그 Simon Pegg 주연 영국 로맨틱 코미디 <런던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Man Up(2015)>에서 잘못된 만남으로 시작했으나 낸시가 결국 놓쳐서는 안 될 제짝이라 깨달은 잭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장면에 등장한 화이트스네이크 Whitesnake의 히트곡 "Here I Go Again"입니다.
원래는 1982년 발매된 화이트스네이크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Saints & Sinners"에 수록되었다가, 다시 리코딩한 버전을 5년 뒤인 1987년 발매한 일곱 번째 앨범 "Whitesnake"에 재수록했고, 1987년 10월 10일 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재발매된 지 석 달만에 1위를 기록한 파워 발라드 히트곡입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달리는 잭의 걸음에 "Here I Go Again"이 흐르면, 마치 운동경기를 보며 응원하듯 잭을 응원하게 되니, 영화와 음악의 시너지가 새로운 방향의 경험을 주기도 하더군요.
두 번째 곡은 줄리아 로버츠 Julia Roberts와 리처드 기어 Richard Gere 주연 로맨틱 코미디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1990)>의 오리지널 주제곡인 록시트 Roxette의 "It Must Have Been Love"인데요.
이 곡은 샤를리즈 테론 Charlize Theron과 세스 로건 Seth Rogen의 언밸런스 로맨틱 코미디 <롱샷 Long Shot(2019)>에서 절묘하게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가 25년 만에 국무장관과 기자로 다시 만나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게 되는 장면에 이 노래보다 더 걸맞은 선곡이 있었을까요?
영화 <롱샷(2019)>에서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듣고 록시트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는데요. 그해 연말인 2019년 12월 9일, 록시트의 보컬 마리 프레드릭손 Marie Fredriksson이 61세라는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몹시 안타까웠던 기억 또한 듭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런저런 플레이와 관계없이 이른바 배경을 이루는 주변 캐릭터인 NPC(Non Player Character)의 귀엽고 유쾌한 반란을 그린 <프리 가이 Free Guy(2021)>는 데드풀 등으로 친숙한 라이언 레이놀즈 Ryan Reynolds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해 준 SF 코미디 액션 영화인데요.
영화 속 게임의 이름이자 게임의 배경인 '프리 시티'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해 은행으로 출근하고, 은행 강도 플레이어 앞에선 꼼짝 못 하는 NPC 가이가 매일 아침 듣는 노래가 바로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의 "Fantasy"입니다.
1995년 발매된 머라이어 캐리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Daydream"의 리드 싱글로,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8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슈퍼 히트곡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가요 중에 가수 송창식의 "참새의 하루"를 방불케 하는, 가이의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지만, "Fantasy"는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으니, 그 또한 신기할 따름입니다.
<유전 Hereditary(2018)><미드소마 Midsommar(2019)>로 기묘하고도 기괴한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아리 애스터 Ari Aster 감독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 Beau Is Afraid(2023)>는 앞선 두 영화 못지않게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는 얄궂고도 희한한 사건사고가 이어지는 공포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어도 그 눈빛에 압도당하는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와 파커 포시 Parker Posey가 펼치는,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하는 문제의 그 장면에 머라이어 캐리의 "Always Be My Baby"가 등장했을 때, 그토록 기이한 선곡 센스를 가진 이는 평소에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역시 "Fantasy"와 함께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 "Daydream" 수록곡인 "Always Be My Baby" 또한 발매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도록 참 많이 들었던 곡인데요.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 같은 노래인데도 전혀 다르게 들리는 희한한 형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곡은 로버트 알트먼 Robert Altman(1925~2006) 감독의 1995년작 <패션쇼 Prêt-à-Porter(1995)>에서 영화 속 피날레에 등장한 아일랜드 록밴드 크랜베리스 The Cranberries의 "Pretty"입니다.
이 곡은 크랜베리스의 데뷔 앨범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의 수록곡으로, "Dreams", "Linger" 등이 싱글로 발매되어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요.
알트먼의 <패션쇼(1995)>는 전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파리 패션 위크를 배경으로 수십 명의 캐릭터와 카메오가 등장하는 블랙 코미디로, 얼마 전 타계한 프랑스 배우 아누크 에메 Anouk Aimée가 연기한 디자이너 시몬 로웬탈의 패션쇼에서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델들이 등장할 때 배경에 깔리는 곡이 바로 "Pretty"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당시에는 피날레 쇼에 등장한 알몸의 모델들의 중요 부위에 빨간 하트가 동동 떠다녀, 화가 날 새도 없이 그저 웃기기만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패션 업계를 비웃는 듯한 알트먼의 의도와 한국의 심의 제도의 맹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빨간 하트 퍼레이드, 그리고 크랜베리스의 노래 "Pretty"가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 순간이었습니다.
유튜브 뮤직을 사용하시는 분께서는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바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