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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Nov 06. 2024

회의(會議)를 위한 회의(會議)에 대한 회의(懷疑)

조대리가 20년의 월급 요정 생활을 종료하고 난 후, 세상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안 좋은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다.


안 좋은 점에 대해 나열하자니 기분이 울적해질 수도 있기에, 일단 좋은 점들에 대해 떠올려 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이 조대리의 머리를 스쳤다.


그것은 바로 쓸데없는 회의를 하느라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회의이건 간에, 무언가 주제에 따라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지성을 동원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건전한 토론을 위한 장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 마디로 '회의를 위한 회의'인데...


예정된 보고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보고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누가 담당을 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한 '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필요한 회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킥오프' 회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담당자를 정하기 위한 회의를 해야 한다면?


담당자 지정을 위한 요건이 무엇일지 관리자 차원에서 사전 회의를 따로 해야 한다면?


이게 무슨 개뼉다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실제 이런 식으로 '회의를 위한 회의'는 지금 이 시각, 어느 회사 어느 회의실에서도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



조대리가 어느 영화제에서 어느 팀의 팀장 일을 하게 된 어느 해였다. 십여 개의 팀장들이 매주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모여 '팀장급 이상 주간회의'를 진행했다. 조대리는 영화제 일은 처음이었지만, 어쨌든 어느 팀의 팀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주간회의의 필수 참석자 중 하나였다.


몇 번째 주간회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영화제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을 어느 날. 평소보다 주간회의가 좀 길어졌었나 보다. 뭐 얼마나 시급한 사안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주간회의는 아무튼 다른 때보다 길어졌다. 조대리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건, 어떤 사안이었든지 간에 그 기나긴 시간 중의 상당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농담 따먹기'가 차지했다는 것.


내면의 하품을 5,016번쯤 했을까. 드디어 (지겨웠던) 주간회의가 끝나고 회의실 밖으로 나오자, 당시 조대리보다 몇 번은 더 영화제를 경험했지만 각자의 이유로 팀장이 아닌, 팀원의 일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이 조대리에게 눈짓을 했다.


그 두 사람과 따로 회의까지는 아니지만 대화를 나누기 위해 외딴 장소로 향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이 가졌던 의문점은 하나였다.


"대체 뭘 그렇게 오랫동안 회의한 거냐"라는.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 중 한 장(章)을 각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2024)>에서 보면,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구재희가 부서장과 몇몇 남자 사원들의 '담배 타임'에 당당하게 끼어들어 시원하게 담뱃불을 붙이며, 내장 깊숙이 담배를 빨아들이며 '남자들끼리 담배 피우며 갖는 긴밀한 회의'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는 담당자가 끼지 않은 '그들끼리 담배 피우며 속닥거린 내용'은, 누군가가 버젓이 회의실을 예약하고, 날짜와 시간을 정해 모여서 가졌던 '공식적인 회의'에서 공유한 내용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치사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럴 수도 있다.


어떤 조직에서는 실무자, 보통 대리급 이하에 속하는 일개미들이 회사 업무와 관련한 중요한 사안을 공유받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그것을 전하는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중요한 얘기'는 지들끼리 쑥덕거리고, 진짜로 구성원들이 알아야 할 사안을 알리는 회의 자리에서는 겉핥기로 일관한다는 것인데.


중요한 사안을 정하는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것을 알아야 하는 부류는 누가 정하는 것이고, 그것을 알려야 하는 시점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그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회의를 한 번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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