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KBS 드라마스페셜]그 두 번째
이미 벌어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기억과 상상 속에서 뒤집어 질 수 있다. 2017 KBS 드라마 스페셜 두번째 작품인 '만나게 해, 주오'가 바로 역사를 상상으로 뒤집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1930년대 경성(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장르는 멜로이자, 소재는 당시 혼인정보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역사책에선 쉽게 찾기 어려운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상 드라마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결말은 남녀의 사랑이 아름답게 이뤄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이들이 맞닥뜨리는 역사를 뒤집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만나게 해, 주오'의 제작진이 뒤집어버리고 싶었던 사실은 바로, 위안부 피해자 징집 문제였다.
남자 주인공 차주오(손호준 분)는 독립운동가에 자금을 대는 아버지의 아들로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 혼인정보회사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여자 주인공 이숙자이자 이수지(조보아 분)는 제천 출신으로 모던보이와의 사랑을 꿈꾸며 상경한 여성이다.
이 두 사람이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나 서로 오해하고, 진실을 확인하고, 마음을 알아가고, 서로를 품으면서 깊어지는 동안 드라마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향해 달려간다.
이들이 사랑을 키워가는 사이, 당시 일본은 한국 여성들을 만주로 징발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들이 쓴 술책은 '징발'이라는 단어를 '파견'으로 바꾼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를 지원하는 아버지 덕에 여성 징발 계획을 알게 된 차주오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이수지를 만주로 보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일본인과 결혼을 해야만 만주로 가지 않을 수 있기에 모진 말을 해가며 이수지를 떨어놓으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은 이수지가 만주 파견을 스스로 선택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차주오는 이수지를 구출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얻으며 만주로 떠나는 기차를 막는다. 숱한 위기의 순간을 거친 끝에 결국 차주오는 이수지를 구해낸다. 이에 더해 이수지뿐 아니라 함께 만주로 징집될 뻔 했던 여성들을 모두 구출한다.
단막극인 만큼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결말을 향해 함께 돕는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도 악역도 의미없이 웃기려 나온 줄 알았던 조연들도 모두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 역사를 뒤바꿔놓는다.
이야기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멜로이지만 그럼에도 여운이 남는 건 우리가 가슴에 품고, 아픔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 슬픈 과거를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인물의 삶으로 풀어내면서 동시에 "아 이랬다면 어땠을까"하는 장면들을 통쾌히 드러낸다.
그런 차원에서 드라마는 역사에 충실하거나 고증을 잘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반갑게 시선을 고정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삶에서 쉽게 이루지 못했던 상상을 눈 앞에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뛰어난 감동이 없었어도 '만나게 해, 주오'는 한 번 만나봐도 좋을 드라마였다. 우리의 삶이 현실과 사실의 늪에서 허우적 거릴 때,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마음 속에 품은 아픈 기억들을 시원하게 뒤집는 상상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