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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절이라면>가장 알맞은 때

[2017 KBS 드라마 스페셜]그 첫 번째

by 브라이스와 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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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절이라면. 이상하게도 드라마보다 제목이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가 '계절'이라면, 어땠을까. 여기서 우리는 누구이고, 계절은 무엇일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2017년 첫 KBS 드라마스페셜인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내용만 떼놓고 보면 단순하다. 첫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냈다. 이를 표현한 방식은 다소 예측가능하다. 툴툴 대지만 여학생에 대한 마음이 깊디 깊은 남학생, 그런 남학생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는 듯 아닌 듯 받아주는 여학생의 모습. 예측가능하다는 것은 어쩌면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을 그려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제목으로 올해 나의 첫 단막극을 풀어보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깨닫는 이야기. 이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왜 '우리가 계절이라면'이라는 제목이 붙은 걸까.


계절. '계절 계'자에 '마디 절'자를 쓴 이 단어는 한 해를 날씨에 따라 나눈 그 한 철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뜻이 더 있다. 바로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알맞은 시절'이라는 뜻이다. 드라마를 본 뒤 계절이라는 단어를 다시 찾아보면서 나는 이 뜻이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어떤 일을 하기엔 가장 좋은 때가 있다. 사랑하기 좋은 때가 있고, 성장하기 좋은 때가 있고, 또는 일하기 좋은 때가 있을 것이다. 드라마 속 고등학생 아이들의 때는 어쩌면 '첫사랑하기 좋은 때'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계절이라면'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알맞은 시절이라면 (어땠을까), 라는 것이다. 주인공 윤혜림(채수빈 분)과 엄기석(장동윤 분)은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을 맞는다. 혜림이 기석과 함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서 키스로 영화가 끝나자 "키스보다 안아주는 것이 더 해피엔딩 같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됐으니 해피엔딩은 맞다. 하지만 그걸 얻기까지 두 사람은 많이 엇갈리고 또다시 각자의 삶의 위치로 돌아가는 이별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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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단막극의 제목은 여운이 남는 가정문으로 만들어졌다. 늘 아련하게 놓치고 마는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순간들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추억을 꺼내보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계절이었다면, 아마 우린 다른 삶을 살았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드라마 속 상황들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더러 있다. 혜림의 아버지는 자신의 외도를 들킨 뒤 "어쩔 수 없었다..."고 힘없게 변명한다. 그 말은 혜림의 마음을 뒤흔든다. 가족의 신뢰를 저버리게 한 외도는 언제라도 '알맞은 때'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아이들은 또다른 성장통이라는 '계절'을 지났다.


해피엔딩이지만 마냥 해피하지 않은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의 계절은 어떤 것이었을까 돌아보게 했다. 단순한 이야기, 에피소드들이 담겼지만 대본 활자가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 영상의 색감과 배경음악으로 살아나면서 과거에 대한 오감을 일깨웠다. 단막극이라고 해서 이를 마냥 예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9월'이라는 숫자에 맞이한 센치한 우리에게 제목 하나만으로도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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