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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Oct 01. 2017

'의욕 충만' 첫 연휴날

[2017 황금연휴일기]#1. 9월30일 토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황금연휴의 첫 날에 다다랐다. 이날이 오기까지 쉽지 않았다. 원래 직장인은 연휴 전이 더 바쁜 법이란다. 쉬는 동안 못할 일들을 전부 미리 해야하니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9월30일 토요일은 여느 토요일보단 조금 더 신이 났다. 아무것도 안 해도 그런 날이다. 이렇게 쉬어도 최소 일주일은 더 쉴 수 있다. 내 연차를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모처럼 늦잠을 잤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잠만 자면서 휴일을 전부 보내고 싶지 않은데.


부리나케 일어나 미뤄둔 방 정리를 하고 씻었다. 오늘 오후 4시에는 마지막 운동(PT)를 약속했다. 야심차게 나온 배를 넣겠다며 8회분을 할인받아 끊었지만 하는둥 마는둥, 갈 때마다 뭉친 어깨와 굳은 허리 마사지만 받고 끝났다. 선생님은 참 친절하셨는데, 비싼 원가와 제대로 운동할 수 없지 않을까하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 선언을 했다. 그래도 미련은 남았다고, 집에서 더 가까운 헬스장 이용권만 끊어뒀다.


휴일마다 나는 '콘텐츠 습득 압박감'을 느낀다. 이번 휴일은 길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바로 카페에서 책과 밀린 주간지를 꺼내들었다. 일주일 내내 가방 속에 묵혀둔 '한겨레21'부터 숙제하듯 읽었다. 그런 와중에도 맘에 드는 콘텐츠는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해당 호는 셰어하우스에서 6주 동안 체험하며 기사를 만든 교육연수생의 기사를 표지이야기로 올렸다. 여성 셰어하우스 체험기인데,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보는 '청춘시대'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조용하고, 삭막하다. 사회상과 주거현실이 만나 이런 모습들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다.


이어 줄리가 고향에 내려가기 전 선물해 준 책, '인간증발'을 꺼내들었다. 자극적인 제목이다. 표지도 어두운 느낌을 띄었다. 우리나라에선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개념인 일본의 '증발' 현상을 프랑스인 작가 부부가 직접 취재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수치심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버리고 '증발'해버린다고 한다. 자기 이름, 가족, 집터를 모두 버리고 어두운 지역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이다. 경직된 일본 사회의 숨겨진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심지어 작가가 취재에 나서자,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그 단어를 말하길 꺼려하고, 회피하려 했다.


이 모습이 우리나라의 모습과 다르기도 했고, 비슷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증발'보다는 '실종', 그리고 '자살'이 더 많다. 증발은 자의적인 실종이 될 것이고, 실종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실종자를 찾는 공고를 많이 내지만 일본에선 증발자를 찾는 일이 많지 않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돈, 수치심, 괴로움 등으로 인해 사라지려하는 것만큼은 비슷했다. 하지만 일본은 증발을 통해 어둡지만 새로운 삶을 추구한다(물론 자살도 적잖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삶을 죽음으로 던져버리는 경우가 더 많이 드러났다.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수치심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사회라는 것은 두 나라 모두 같다. 책은 소설처럼 증발자들의 삶, 취재기를 그렸다. 안타까운 건 책이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담았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저녁식사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했다. 창밖으로 저멀리 여의도 인근에서 불꽃이 터지는 게 보였다. 이 정도 봤음 됐지 뭐.


밤에도 그냥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이전부터 보고싶었던 '킬링타임'용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를 예매했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 딱 좋은 영화였다. 유쾌한 대사와 긴장된 액션, 배우들의 매력이 전부인 영화다. 다만 여기서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에 대입한 나의 모습이었다.


실력있는 경호원으로 평가받는 마이클 브라이스(여기 주인공도 브라이스가 들어간다)는 연애에 있어선 상당히 찌질한 면모를 보인다. 아무 잘못 없는 전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 대신 '용서한다' 수준의 말을 한다던가, 타이밍 못잡고 진지한 얘기를 꺼내곤 한다. 또 소심해서 본능보다는 계산으로 움직이는 아집을 보인다. 이에 본능에 충실한 솜씨 좋은 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는 브라이스에게 "너 같은 놈을 받아 줄 여성은 아무도 없을걸. (여자친구 밖에는)"이라고 놀린다.


왠지 내 모습 같았다. '있을 때 잘해야지...'라며 또 반성하게 됐다. 이날만큼은 옆자리에 앉을 여자친구를 고향에 보내놓고, 혼자 앉아서 대신 옆을 메운 커플을 보며 부러워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때리고 부수는 영화를 보면서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마무리한 연휴 첫 날. 9월30일 황금연휴 첫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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