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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Sep 10. 2017

너, 변했다

내가 남긴 글들을 다시 되돌아보다 문득

"너, 변했다"

권태기에 빠진 남녀 사이에 충분히 상상 가능한 문장이다. 슬프게도, 나도 최근 줄리에게 이 말을 이따금 들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줄리에 대한 내 마음과 노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일종의 선언)이다.


최근 줄리에 대한 나의 태도도 안일해졌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남기게 된 이유이자 더 심각한 나의 '변해버린 점'은 삶에 대한 나의 태도다.


어제 줄리와 거리를 걸으며 브런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매거진을 개설해두고 글을 채우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취업에 성공하기 전 내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 구석구석을 다녀보겠노라며 만든 매거진 '오래된 거리를 거닐다'에 대한 것이었다. 인턴 시절 만든 게시물 하나를 올린 뒤, 단 하나의 게시물도 만들지 않았다. 줄리는 매거진에 하나만 글이 올라와있는게 외로워보인다는 정도로 말했지만, 뭔가를 하겠다며 책임지지 않는 내 모습에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최근 내가 '문득' 드는 생각이라며 남긴 글들을 다시 읽었다. 글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무기력'이다. 바쁘고, 힘들어서, 정신이 없어서 무기력하다는 따위의 감정들이었다. 이 감정들을 나쁜 것이라고만 치부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내가 수습이던 때, 취업준비생이던 시절 남긴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완벽히 '변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날이 춥던 지난 1월 어느 평일, 나는 브런치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불과 두세 달 전만 해도 7시간을 자도 졸려했는데 이젠 5시간만 자도 꾸역 잘 일어난다" 취준생 땐 잠이 많아 힘들었는데, 수습 땐 5시간만 자도 재깍 일어났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반대 상황으로 돌아왔다. 7시간을 자도 힘들어하고, 조금만 일이 더 생겨도 불평불만을 속에서 늘어놓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고작 몇 개월 지났는데 안락함에 취해버렸다. 희망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커녕, 피로감만 호소했다. 사실 어제도 줄리에게 나는 내 시간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여전히 나는 바쁘고 힘드니 나만의 시간을 내기 위해 쉬고싶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줄리는 나의 아픈 곳을 찔렀다. 맘만 먹으면 더 부지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이전보다 더 시간이 많아졌는데도 불평하는 건 내가 부지런해지기를 회피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난 바쁨을 핑계로 무기력함을 내 삶 전반에 덧씌웠고, 침잠했다. 힘든 것도 없으면서 우울증 증세가 있다는 식으로 궤변을 늘어놨다. 오죽하면 삶의 아무 의욕이 없다는 따위의 말을 했다. 그러니 줄리에게도 "변했다"는 핀잔을 듣고, 스스로 나를 보기에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깨달음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매주일마다 나는 업무 일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서 새롭게 다짐을 한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서 신문을 보고, 글 쓸 거리를 미리 생각해야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 내 모습은 쫓기듯 움직이는 게으른 직장인이다.


"너, 변했어"라는 문장은 내게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변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과 생각을 스스로 관리하지 않았기에 오는 '질환'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나도, 저런 나도 '나'이다. 받아들이고 어떤 것이든 해나가야 한다. 오늘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온갖 생색을 내며 가진 저녁 시간. 일주일 동안 가방에 넣고만 다닌 주간지의 한 기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한 정신과의사의 말이다.


"아무리 피부가 좋았던 사람도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매일 로션을 발라주지 않으면 푸석푸석해진다. 뇌도 마찬가지다. 뇌도 계속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때문에 쉬어야 하고, 먹을 것을 넣어줘야 하고, 단련해야 한다. 피부 관리하듯이 관리해야 한다. 하루 15분 이상 자기 관리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게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방점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가 아닌, 뇌를 '관리해야 한다'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잠도 잘 자고, 온갖 애를 써서 쉼을 찾았다. 하지만 뇌를 방치했을 뿐, 관리해주지 않았다. 몸을 깨끗이 씻고 외출을 준비하듯, 뇌도 깨끗이 씻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게 줄리는 "사회초년생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격려해줬다. 참 고맙다. 자신을 서운하게 만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닐텐데 말이다. 이 긴 글을 어디선가 읽어주는 누군가 중에도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여 그 분도 사회초년생으로서 성장통을 앓고 있다면, 여기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노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는 변할 수 있다. 다짐이 무너질 수도 있다. 반복된 실수에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오늘도 또 다짐을 해본다. 부디 이번 다짐은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람이 바람에 머무르지 않고, 내 팔다리, 눈코입을 이어지길.


2017년 9월10일 부끄러운 일기 끝.


p.s

오래된 현재를 거닐다의 콘텐츠도 다시 고민해야겠다. 사라지지 않은 뭔가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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