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이스와 줄리 Oct 03. 2017

'찰나의 여행' 연휴 셋넷째날

[2017 황금연휴일기]#3. 10월2~3일 월~화요일. 경주.

매일 쓸 것처럼 한 황금연휴일기. 3일 만에 다짐이 무너졌다. 작심삼일을 못 가는 수준이다. 나름의 핑계를 대보자면, '찰나의 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어린 시절 가족과 자주 방문했던 경주였다. 늘 부모님의 차 뒷자리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경주를 뚜벅이가 돼 구경했다. 스스로 거닐며 찾아다닌 첨성대와 골목들, 사우나까지. 새로웠다. 세상은 어떤 방법, 어떤 지점,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늘 다니던 골목이 다닐 때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것처럼. 


명절 채비로 바쁜 서울역을 홀로 거슬러 KTX 열차에 올랐다. 묘한 쾌감이 있었다. 고향을, 가족을 보기 위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오늘만큼은 '명절이 아닌 나'지만 명절을 누렸다. 


경주는 '천년 고도의 도시'다. 수많은 능, 달리 말하면 무덤이 모여있는 도시다. 유물이 아직도 발굴되는 곳이기도 하다. 또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춘 '황리단길'이 뜨는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경주 이곳저곳을 누볐다. 여느 때처럼 가볍지 않은 배낭을 메고서다(내가 운전을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다). 배낭을 메고 거닐면 남들과 다른 걸 볼 수 있다. 차로는 들어설 수 없는 좁은 골목길, 그 사이사이를 누비다 기대치 않았던 고즈넉한 카페라든지. 또 서울서 보기 힘든 '식육점'(정육점을 이렇게 부르는 듯 하다?)과 같은 간판을 본다던지. 이 모든 것이 즐거움이다. 

대릉원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던 '감'들. 주인 없이 흐드러지게(!) 감이 열려 있었다. 

우리는 많은 능이 모여있는 대릉원을 세 번을 돌았고, 보문호를 크게 둘러 걸었고,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들을 타며 시내와 시내 사이를 누볐다. 택시는 첫 날 한 번만 탔다. 남들 다 가는 맛집도 갔고, 남들 줄 서서 먹는 교리김밥도 마감 전에 얻어 먹었고, 남들 다 찍는 자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남들 다 하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했다. 같이 거닐며 킬킬대고 쳤던 장난들, 농담들, 흥얼거렸던 노래들(이번 여행 노래 테마는 자이언티 흉내였다)이 남는다. 


신경주역에 10월2일 15시40분에 도착했는데 10월3일 15시45분쯤에 다시 돌아왔다. 정확히 24시간5분 정도. 지금도 다리는 피곤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정신없이 고개를 떨궜지만 행복했다. 여행을 돌아보며 대단한 '명문장'이 써지진 않지만, 사진이 남았고, 기억이 남았고, 사람이 남았으니 그거면 됐지. 


서울로 돌아오니 밤바람이 한층 더 스산해졌다. 경주의 바람도 따뜻하진 않았지만, 이제 정말 가을 겉옷을 꺼낼 때가 됐다.  

남들은 첨성대 옆에 있는 핑크뮬리를 보고 줄서서 사진을 찍었겠지만, 우리는 길을 걷다 만난 핑크뮬리에서 '인생샷'(!)을 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먼지 털어내기' 연휴 둘째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