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황금연휴일기]#5. 10월5일 목요일.
뭔가를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의 의미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명절 때마다 의례적으로 만나지만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 아쉽고도 감사한 가족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며 면접장 문 앞에서 손을 연신 비비는 순간. 어떤 사람이 나올지 기대하며 몸둘바를 모르는 소개팅의 기다림. 그리고 고향에 돌아오는 '너'의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에 혹여라도 늦을까 미리 와서 빙빙 도는 것.
이러나저러나 기다림은 대부분의 경우 귀하다. 누군가는 낭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많다. 책을 볼 수도 있고, 뭘 먹을 수도 있고, 상념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일기를 쓰는 경우가 되겠다.
오늘은 내 나름대로 진일보하는 경험을 했다. 진일보라기보다 퇴보한 걸 조금 되돌리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나는 온 가족을 차에 태우고 할머니댁으로 직접 운전으로 서비스했다. 서비스라면 거창하고, 놀이기구를 태웠다 정도가 적절하겠다. 약 30분 운전하면서 1경적을 당했고, 실수로 밖에 붙인 초보운전 용지는 운전 도중 날아가버렸다. 또 할머니댁에 가는 길이 헷갈려 어쩔 수 없이(절대 운전을 못해서가 아니다) 교대해야 했다.
이십대 후반이 되도록 아직 운전을 제대로 못하지만 이번에 작정하고 도전을 했다. 막상 하면 금방 하게 되지만 아직도 두려운 건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좀 더 도전하면 그때는 진짜 진일보할 수 있겠지.
6개월에 한 번 뵙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식사를 나눴다. 나는 직장에서의 삶을 조금 전해드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막상 만나면 어색하고,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면 아쉬운 게 우리 사이가 된 듯 하다.
집에 돌아와선 뜬금없지만 계획에 없던 중고책 매매에 나섰다. 집에서 뒹굴고 있는, 다시는 손 대지 않는 몇 권의 책을 들고 인근 중고책 서점으로 나섰다. 무사히 판매한 금액은 현금 대신 예치액으로 놔뒀다. 앞으로도 종종 중고책 서점으로 발길을 옮길 수 있도록 말이다. 나서기 전에 반충동적으로 2권의 책을 구매했다. 한 권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하루키의 책이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오면서 김연수의 소설을 읽었다. 사실 이 책도 중고책 서점에서 산 것이었다. 몇 개월 전에 샀지만 이제서야 슬쩍 꺼내봤다. 김연수는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라고 말했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늘 헛똑똑이지만 똑똑이처럼 산다고 교만했다. 어쩌면 지금 이 글도 교만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고민하는 사이, 너가 도착하기 5분 전이 됐다. 널 만나면 반갑게 안아주기로 다짐하며 오늘의 일기는 일찍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