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KBS 드라마스페셜]그 여섯 번째
"윤봉길 의사는 알지만 그와 동행한 '이화림'은 낯설다. 임시정부는 알지만 안살림을 맡았던 '정정화'는 낯설다. 모두 낯설지만 실재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공적이 적다는 이유로, 노선이 달랐다는 이유로 잊혀졌던 '그녀'들의 흔적을, 작고도 큰 이야기에 담았다."
단막극 '강덕순 애정변천사'의 기획의도다. 제목에는 '애정'이 달렸지만 애정의 무게는 사뭇 달랐다. 남녀의 애정으로 시작했다가 조국을 향한 애정으로 '변천'하는 이야기가 드라마에 담겼다.
드라마를 보면서 반가웠던 이유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집중해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암살'에서 적극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그려진 '안옥윤'(전지현 분, 실제 모델은 남자현 지사)의 모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보였다.
현대의 시선에서 드라마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녔다. 한 남성과의 결혼에 의존하던 여성 강덕순(김소혜 분)이 주체성을 얻는 의미, 그리고 덕순과 그와 함께하는 여성들이 주역이 된 독립운동에 대한 의미다.
덕순은 시골 소녀로 까막눈에 오로지 김석삼(오승윤 분)과의 결혼만 생각한 여성이다. 하지만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덕순이 석삼은 달갑지 않다. 결국 석삼은 까막눈 덕순에게 "독립군이 될 것"이라며 '주소'라고 소개했지만 "미안하다 나는 잊어줘" 정도의 문장이 담긴 거짓 쪽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를 주소로 철석같이 믿은 덕순은 경성으로 따라간다. 안타깝게도 거짓 쪽지를 수소문하다 덕순은 '진짜 독립군'의 기지로 들어가게 된다.
'모녀주막'이라는 위장 간판이 놓인 그곳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기거하는 기지였다. 오로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건 여성들이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덕순은 용기를 내 글자를 배우길 시도하고, 가까운 동지의 죽음을 보면서 독립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 속에서 덕순은 '종속'이 아닌 온전한 '독립'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얻는다. 까막눈인 자기에게 글을 알려주는 조국희(박서연 분)에게 덕순은 가장 먼저 석삼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다. 자길 버리고 떠난 남자이지만 그럼에도 덕순은 석삼에게 종속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희는 석삼 대신 '덕순'을 써서 덕순에게 건넨다. 이어 국희가 그 밑에 쓰는 단어는 '독립'. 그러면서 말한다. "홀로 독. 설 립. 다른 곳에 예속되지 않고 홀로 선다는 것을 의미해"라고 말이다. 덕순에게 독립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이후 과정은 우리가 상상할 만한 독립운동군의 모습이 나온다. 누군가는 작전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고, 다시 마음을 추스린 운동가들은 독립을 위한 또다른 발걸음을 내딛는다. 까막눈이면서 남자만 보고 경성으로 올라온 덕순도 이제는 함께다.
마지막 거사날. 덕순도 거창하진 않지만 도주로 확보와 잔심부름 전달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그 일을 하던 도중 자신을 버리고 떠난 석삼을 우연히 마주친다. 알고보니 석삼은 거사 대상의 일가가 돼 있었다. 그럼에도 덕순은 석삼에게 마지막 온정을 베푼다. 폭탄이 터지게 될 현장에서 함께 도망쳐준 것. 놀란 석삼에게 덕순은 마지막 쪽지를 전한다. 그 쪽지에 써있는 내용은 바로 '덕순, 독립'.
그렇게 거사는 성공적으로 끝나고, 덕순은 독립운동 근거지 '모녀주막'을 지키는 새로운 딸이 된다. 이제는 종속적이지 않은, 주체적인 여성으로 말이다.
기획의도에 쓰였던 것처럼 '강덕순 애정변천사'는 당시 있을법한 남녀 애정의 흐름을 매개로 여성의 주체성, 독립운동기를 함께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성 중심으로 기억되는 독립운동 역사를 이렇게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더욱 기억할 만한 드라마다.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역사는 아직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가치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할만한 지나침을 찾는 것. '강덕순 애정변천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