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by 브라이스와 줄리

한창 회사를 관둘지 말지 고민할 때, 내 결정에 쐐기를 박아준 건 다름 아닌 '사주'였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평소에 보지도 않는 사주에 건다는게 우스웠지만 그만큼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던 때였다. 사주 선생님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잘 맞췄다. 그러다 사주풀이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그는 내게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하자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별안간 올해 '이별수'가 있다고 했다. 내가 '갑자기, 느닷없이 뻥하고' 차인다고 덧붙이면서. 티내지않고 묵묵히 있어주다가 내게 지쳐 이별을 고할 거라고 말이다.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앞서 나눴던 진로 고민을 다 잊어버릴 만큼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는 회사 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터라 실제로 갖은 짜증과 예민함을 건이에게 토해내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 늘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가 이런 모습조차도 다 이해해주길 바랐다. 사주 선생님은 당황하는 나를 보더니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일 뿐'이라는 위로를 건넸다. 그닥 위안이 되진 않았다.


건이는 이 얘길 듣고 "사주보길 잘했네. 앞으로 잘해. 히히" 하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이별수' 이야기는 내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른 걸 보느라 정작 진짜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이는 내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언제부턴가 그를 빼놓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됐다. 이를 계기로 무엇을 하든 건이를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회사를 관두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다시 늘어졌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떠오르는 계획도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게 심지어 나쁘지 않았다. 건이는 이런 시간 동안에도 나를 보채거나 채근하지 않았다. 가끔 '혹여나 건이가 이런 나에게 지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기에 '에이 설마'하고 넘기곤 했다. 그렇게 안일해졌던 내게 나와 그를,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입사 초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도화가 어느 순간 자기 앞에서 더이상 직장 얘길 꺼내지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한 시절과 작별하는 기분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뒤도 안 돌아보기' 위해 이를 악물며 1호선 상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바깥은 여름> 중 '건너편'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다가 몇 번이고 다시 봤던 대목이다. 도화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건이의 세계도 커져가고 있었다. 취준생일 때부터 인턴을 하고 입사를 하고 자기만의 영역이 생겨나가는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사회생활을 해보았기에 '세계가 커져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불현듯 나의 '소속 없는' 세월이 너무 길어져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가 의미 있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여기에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던 풍경이 어느새 낙엽이 지고 두꺼운 패딩을 꺼내입지 않으면 안되는 계절로 변했다. 태평스럽던 나도 내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고, 묵묵히 지켜주던 건이와 가족들이 자꾸만 더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원서를 넣었고, 몇 주 후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한때 '일반적인' 사회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쌓았던 얄팍한 경험들 때문에 모든 게 시시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기저엔 무언가를 다시 도전해볼 자신이 없고, 혹여라도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와중에도 생각보다 평안한 나날들을 보내게 해준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다시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 실패를 의미하는 '타협'이 아니라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너에게'라는 제목을 짓고 말 그대로 너에게 그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또 나 자신을 위해 지금을 기억하고 싶다. 좋았다, 좋지 않았다 또는 옳았다, 옳지 않았다가 아니라 나에게 이러한 시간도 있었음을 그냥 그 자체로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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