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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Dec 25. 2017

잃어버린 뒤에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뒤늦은 이해와 반성으로 부끄러운 밤에

잃어버린 뒤에야 소중하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엊그제 떨어트렸다 줍지 못한 동전이 오늘 자판기 앞에서 절실하게 필요할 때. 엄마한테 버려도 된다고 했던 장난감이 어른이 된 뒤에도 가끔 마음 속에서 아른거릴 때. 살아있을 땐 큰 관심이 없었던 음악가의 노래가 떠난 뒤에 절실하게 다가올 때.


떠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의도치않게 고인을 모욕할 수도 있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글로써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남기는 건, 그가 떠난 뒤 다시 듣게 된 노래 하나하나가 마음 속 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한숨'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은 건 MBC '복면가왕'을 통해서였다. 가면 속에서 뿜어내는 소향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음원으로 공개된 노래를 몇 번씩 반복해 듣다보니 소향의 실력보다 가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숨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지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괜찮아...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실수해도 된다고, 난 당신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안아주겠다고 말하는 작사자가 마음이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이후 이 노래가 종현의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내 기억엔 '누난 너무 예뻐'를 부른 또래 아이돌이었는데, 이런 좋은 곡도 만드는구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그가 달리 보였다. (이전의 '가을이긴 한가봐' 같은 곡도 참 좋아했었다)


'한숨'을 마음이 무겁고 힘들때 종종 들었다. 바쁘거나, 힘이 들지 않을 땐 잊고 지냈다. 그렇게 "이 친구가 만든 노래도 좋구나"라는 생각을 품은 정도로 살다가, 비보를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사실 그렇다고 내 삶이 달리 변하진 않았다. 다만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생겼다. 그의 앞에서 그를 비난한 적도, 댓글을 단 적도 없지만, 그가 떠난 뒤에야 다시 그의 노래를 하나하나 꺼내보기 시작한 것에 미안했다. 그가 떠난 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한숨'이란 곡이었다.


다시 노래를 꺼내들으면서 그가 써내려간 가사들이 묘하게 다가왔다. 상대에게 하는 말 같으면서도 자신에게도 했던 말일 것 같았고, 거꾸로 '나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나를 위로해주는 이 없나...'라는 외로움을 그가 느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 작은 라디오의 오프닝을 쓸 때 나는 '위로'라는 말을 참 많이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 나는 위로 받은 적이 없다고 혼자 우울감에 빠질 때가 있었다)


가 만든 다른 노래들을 뒤늦게 더 찾아들었다. '하루의 끝'을 들으면서는 "맘껏 울 수도 맘껏 웃을 수도 없는 지친 하루의 끝"을 맞이했을 그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1000'이라는 곡에선 '하루는 금세 지나가고, 내일은 코앞으로 다가오는' 기분과 "편히 쉴 곳이 필요하다"고 노래하는 그의 마음을 엿봤다. "난 복받은 사람"이라고 읊조릴 때 괜시리 마음이 시렸다.


노래를 쓴 사람의 마음을 그 누구도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그걸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십분 이해할 수는 있다. 나 역시 주제넘게 아는 척 하고 싶진 않다. 그저 한 사람이 떠난 뒤에야 이렇게 해석을 달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도 잃어버린 뒤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 하나 슬픈 건 언젠가 이 마음도 무뎌질 것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가까운, 그런 이들을 잃는다면 어떨까. 좀 더 아프고 좀 더 오래 힘들다가 좀 더 늦게 무뎌지는걸까.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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