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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뒤에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뒤늦은 이해와 반성으로 부끄러운 밤에

by 브라이스와 줄리

잃어버린 뒤에야 소중하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엊그제 떨어트렸다 줍지 못한 동전이 오늘 자판기 앞에서 절실하게 필요할 때. 엄마한테 버려도 된다고 했던 장난감이 어른이 된 뒤에도 가끔 마음 속에서 아른거릴 때. 살아있을 땐 큰 관심이 없었던 음악가의 노래가 떠난 뒤에 절실하게 다가올 때.


떠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의도치않게 고인을 모욕할 수도 있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글로써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남기는 건, 그가 떠난 뒤 다시 듣게 된 노래 하나하나가 마음 속 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한숨'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은 건 MBC '복면가왕'을 통해서였다. 가면 속에서 뿜어내는 소향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음원으로 공개된 노래를 몇 번씩 반복해 듣다보니 소향의 실력보다 가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지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괜찮아...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실수해도 된다고, 난 당신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안아주겠다고 말하는 작사자가 마음이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이후 이 노래가 종현의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내 기억엔 '누난 너무 예뻐'를 부른 또래 아이돌이었는데, 이런 좋은 곡도 만드는구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그가 달리 보였다. (이전의 '가을이긴 한가봐' 같은 곡도 참 좋아했었다)


'한숨'을 마음이 무겁고 힘들때 종종 들었다. 바쁘거나, 힘이 들지 않을 땐 잊고 지냈다. 그렇게 "이 친구가 만든 노래도 좋구나"라는 생각을 품은 정도로 살다가, 비보를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사실 그렇다고 내 삶이 달리 변하진 않았다. 다만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생겼다. 그의 앞에서 그를 비난한 적도, 댓글을 단 적도 없지만, 그가 떠난 뒤에야 다시 그의 노래를 하나하나 꺼내보기 시작한 것에 미안했다. 그가 떠난 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한숨'이란 곡이었다.


다시 노래를 꺼내들으면서 그가 써내려간 가사들이 묘하게 다가왔다. 상대에게 하는 말 같으면서도 자신에게도 했던 말일 것 같았고, 거꾸로 '나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나를 위로해주는 이 없나...'라는 외로움을 그가 느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 작은 라디오의 오프닝을 쓸 때 나는 '위로'라는 말을 참 많이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 나는 위로 받은 적이 없다고 혼자 우울감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가 만든 다른 노래들을 뒤늦게 더 찾아들었다. '하루의 끝'을 들으면서는 "맘껏 울 수도 맘껏 웃을 수도 없는 지친 하루의 끝"을 맞이했을 그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1000'이라는 곡에선 '하루는 금세 지나가고, 내일은 코앞으로 다가오는' 기분과 "편히 쉴 곳이 필요하다"고 노래하는 그의 마음을 엿봤다. "난 복받은 사람"이라고 읊조릴 때 괜시리 마음이 시렸다.


노래를 쓴 사람의 마음을 그 누구도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그걸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십분 이해할 수는 있다. 나 역시 주제넘게 아는 척 하고 싶진 않다. 그저 한 사람이 떠난 뒤에야 이렇게 해석을 달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도 잃어버린 뒤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또 하나 슬픈 건 언젠가 이 마음도 무뎌질 것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가까운, 그런 이들을 잃는다면 어떨까. 좀 더 아프고 좀 더 오래 힘들다가 좀 더 늦게 무뎌지는걸까.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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