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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Jan 17. 2018

'제목 없음'

그냥

나른하게 배를 내밀고 앉아본다. 이런저런 문장을 썼다 지워본다. 목적 없는 생각들을 바로잡아본다.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취하는 태도다. 내 귀에는 밀려서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드라마의 대사들이 꽂힌다. 뭘 써볼까, 고민한다. 쓰고 싶은 건 없다. 자책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게.


휴가 동안 서점을 하루에 한 번씩 다녀왔다. 읽은 책은 없다. 서점 곳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글자를 통해 표현된 세계에 빠진 사람들을 구경한다. 다들 집중하고 있다. 어느 순간 나는 집중을 하지 못한다. 긴 글을 한 숨에 읽는 지구력이 없어졌다. 아니, 내가 없앴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저 서점에 깔끔하게 진열된 표지들을 쓰다듬어본다. 제목만 읽어도 내게 가장 맞을 내용을 알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나의 것'을 찾기 위해 내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휴대폰을 바꿨다. 2년을 지키진 못했지만 그래도 1년7개월 정도를 고장 없이 썼으니 오래 버틴 셈이다. 휴대폰 속 연락처, 메시지 등을 옮기는 걸 기다렸다. 지루했다. 휴대폰도, 노트북도, 어떤 영상도, 활자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다. 고작 20분 이내였는데 말이다. 새 휴대폰은 만족스럽다. 아주 비싸지도 않은 것이, 최고급도 아닌 것이 적당해서 좋다.


여행을 준비한다. 내일 아침에 떠난다. 지난 3일은 무위도식하는 기간이었다면, 남은 3일은 유위도식의 시간이다. 사진도 찍고, 꿈꿔온 일도 해볼테다. 여행은 갈 수만 있다면 늘 옳다. 적극적이어도 좋고, 비적극적이어도 좋다. 나는 소심하다. 둘러보는 일은 자신있다. 하지만 그 이상 가깝게 다가가진 못할 때가 많다. 겁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다.


여전히 강박에 시달린다. 요새는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민한다. 지구력의 부족도 느낀다. 뭔가 첫 발을 내딛는 걸 잘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다는 책이 수도없이 쏟아지는데, 뻔한 얘기라고 치부하면서도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지 않다. 자기계발서를 무시하면서 가장 자기계발이 필요한 삶을 산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삶. 혼자 남겨지면 밥먹을 때 편의점, 김밥천국, 맥도날드, 가끔 용기내면 라멘집 수준으로 밖에 가질 못한다. 스스로 운전도, 요리도, 뭔가를 배우는 일도, 고치는 일에도 잘 내딛질 못한다. 참 찌질하다.


이런 찌질한 강박증 늙은 청춘을 돌봐주는 이들이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내 장점이 뭐지? 싶기도 하다. 글쎄, 내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에 대해선 제대로 할 지 몰라도 그 울타리를 넘는 순간 무능력해진다. 이런 나를 한 발 한 발 내딛게 해주는 이들이 고맙다. 참 고마운 이들이다.


반전을 꿈꾼다. 분명 올해는 좀 더 힘을 내서 지난해보단 발전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있게 해야만 한다. 있게 하고 싶다. (이것도 사실 박일게다) 강박으로라도 발전을 해야한다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강박이 나를 움직인다면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억지로 하는 것 아니냐며 가끔 핀잔을 듣는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말로라도 해야 그리 되지 않겠냐고. 동의한다. 마음은 그렇다고 말하는데도 실천하는데 망설임 있었다면, 억지로라도 움직이고 싶다.


그러다보면 내 것이 되겠지. 내 마음은 그게 맞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지금 내 마음은 그렇게 해야된다고 적극적으로 외치고 있으니까. 찔끔찔끔, 꼬물꼬물 발전해갈 내 모습을 기대한다. 그렇게 함께 맞이할 우리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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