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로 아침-점심을 바닥에 누워 보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말을 생각해봤다. 뜬금없이 어른을 떠올린 건 숙취로 휴일을 바닥에 누워 보내면서다.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긴장의 끈을 풀었던게지. 그래도 오늘 오전이 너무 힘들었다. 숙취로 불리는 모든 증상을 다 겪었다. 구토, 두통, 오한, 메스꺼움까지.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걸렀다. 저녁이 돼서야 겨우 제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숙취로 이렇게 기어다닌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없진 않다. 그래도 숙취 약을 사러 나갈지 고민하거나, 그 약을 사먹으러 갈 힘도 없다, 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그 고생을 겪는 와중에 내 나이가 생각났다.
스물아홉. 누군가는 아홉수라고 부르는 나이다. 사실 나는 내 나이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처한 곳에 내가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더 중요했다. 보통 막내 역할을 많이 맡았다. 나이에서 벗어나 막내인 게 편했다. 하지만 내 회복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겪으며 이십대 초반 벌떡 일어나던 내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국어사전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 정의를 보니 아직 난 어른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또는 결혼한 사람도 어른이라고 분류한단다. 그러면 나는 어른에 가까워진 게 맞는 거 같다. 결혼을 3개월 남짓 앞두고 있으니까.
내 나름대로 어른을 정의해보고 싶었다. 딱히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도리어 더 내 중심으로 변하는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몸과 정신을 더 챙기고, 내 사람을 더 챙기는 그런 것들 말이다. 도리어 이기적인 사람이 어른인 것 같다.
요즘의 나는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게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이 챙겨주신 홍삼은 잘 먹었다) 건강보조제를 스스로 구매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누가 주신 것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내 돈 주고 스스로 건강보조제를 먹는다니. 먹고마시는 것도 바뀌었다. 스스로 밥 양을 조절한다거나, 하루에도 서너잔씩 들이키던 커피 메뉴를 주스로 선회한다던가. 내 건강과 안위를 살피게 됐다. 어쩌면 결혼을 앞둔 입장에서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그렇게 만든건가.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내가 더 어른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은 내 맘 속에서 아집이 피어날 때다. 과거의 나는 갈대 같다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더 많았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먼저 상대를 판단한다. 그리고 재단한다. 저 사람은 저정도의 이야기를 하는구나. 이야기를 들을지 말지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 내게서 남을 수용하는 모습이 사라지는 걸 볼 때, 나는 어른이 됐구나..라고 느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 중심적 사고를 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로 YE와도 이따금 부딪친다. YE에게 서운함을 안길 때가 많은 것이다. 머리는 답을 알면서도 말과 표정은 생각대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다. 적어도 지금은 '좋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어른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앞으로 나는 많은 인생의 변화를 지나야 한다. 헤쳐나가야 할 파도도 많고, 헉헉 대며 걸어야 할 오르막길도 많을 것이다. 때로는 침묵하며 기다려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스러지는 다른 어른들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건 느껴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