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행이 가족여행되기까지
광복절부터 시작된 여름휴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원래는 결혼준비에 일정을 채우려했다. 하지만 두고두고 서운할 것 같은 마음에 제주도행 비행기를 찾았다. 경제적원리이겠다만 다른 지역 이동수단, 숙박을 찾아봤지만 제주도만한 곳이 없었다. 비행기도 저렴했고, 숙박도 좋은 질의 저렴한 숙박이 있었다.
그렇게 16일 급작스레 시작된 혼행(혼자여행). 기분이 좋아진 나는 서점에서 이런저런 책을 구매하며 잔뜩 허세를 부려봤다. 비행기에서 내 마음을 잘 달래줬다. 특히 내게 무해한 사람 이라는 소설은 그동안 무뎌진 감수성, 사람들을 향한 시선과 생각의 끝을 가다듬을 수 있는 문장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혼자였지만 여행은 혼자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줄리와, 또 그 가족여행에 내가 처음으로 합류한 역사적인 여행이었다.
아이 하나에 어른 여섯. 카니발에 다들 몸을 함께 넣어 이동한 기억. 자연 곳곳을 두루두루 다니며 사진을 찍고, 눈에 풍경을 담으려 한 기억. 기분이 좋아진 줄리가 가족들에게 신나게 애교를 피던 기억. 조카가 사랑을 받고싶어 잔뜩 어리광을 피던 모습. 이런 풍경들을 보는 가족들의 웃음기 머금은 눈빛까지. 새로운 기억이 될 것이다.
저녁엔 흑돼지와 술을 잔뜩 마셨다. 가족들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서로를 격려하며 웃고 떠들고 우린 일찍 잠들었다. 꿈속에선 다들 그날 벌어진 일들을 곱씹었을게다.
제주도는 늘 내게 새로운 풍경을 줬다. 물론 어떤 현장(강정해군기지, 잘려나간 나무들)들을 지날 때는 해마다 변하는 모습에 가슴 아팠지만. 올해는 가족이 만들어지는 풍경을 보여줬다. 앞으로 우리에게 제주도는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기대된다.